호사다마인가, 아니면 예정된 논란인가. 대한민국 여름에 '빠빠빠' 열풍을 더한 5인조 신인 걸그룹 크레용팝이 무대를 벗어나 가요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 걸그룹의 콘셉트를 표절했다는 비판과 함께 우익 성향 논란까지 겹치며 특정업체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다한 노출 대신 귀여움을 무기로 내세운 크레용팝을 둘러싼 논란은 국내 대중문화 소비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따른다.
20일 인터넷 쇼핑몰 옥션은 크레용팝을 모델로 내세운 자사 광고를 잠시 중단키로 결정했다. 크레용팝을 모델로 발탁한 것에 항의하는 일부 회원들의 사이트 탈퇴가 이어지자 이뤄진 비상조치다. 논란의 불길은 축구경기장으로까지 번졌다. 28일 프로축구 FC서울과 전북의 경기에 예정됐던 크레용팝의 시축도 취소됐다.
크레용팝이 논란의 중심에 선 이유는 일명 '일베' 의혹 때문이다. 크레용팝 멤버들이 방송과 SNS 등에서 쓴 '노무노무' '쩔뚝이'라는 표현이 극우 성향 사이트로 알려진 일간베스트(일베)에서 각각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일베 회원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이다.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과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베와 관련한 글을 올린 사실은 이런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일베 논란이 점점 커지자 크레용팝의 멤버 웨이는 "평소 즐겨 쓰는 어투를 쓴 것뿐이고 그 사이트를 알지도 못 한다"고 해명했고, 소속사 대표 황모씨는 "일베에 접속한 건 맞지만 정보 습득이 목적이었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7월 데뷔한 크레용팝은 올해 6월 발표한 '빠빠빠'가 SNS에서 유명세를 타기 전만 해도 수많은 무명 신인 중 하나에 불과했다. 크레용팝이 회자되기 시작한 건 독특한 의상과 안무 때문이었다. 운동복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와 셔츠, 오토바이 헬멧은 노출 경쟁에 나선 걸그들과 전혀 다른 의상 콘셉트였고,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 왕복운동을 연상시키는 '직렬5기통' 춤은 현란한 군무에 피로를 느낀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의상과 안무 덕에 '빠빠빠'의 인기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가온차트의 디지털 종합 부문 3위까지 올랐다. 30, 40대 '삼촌 팬'들이 급증하며 '팝저씨'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고, 세계적인 음반사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는 소속사와 전략적으로 제휴하기에 이르렀다.
크레용팝 논란은 일베 의혹에 그치지 않고 있다. '빠빠빠' 활동 초기부터 제기됐던 콘셉트 표절 논란도 커지고 있다. 헬멧과 트레이닝복, 이름표 등이 일본 걸그룹 '모모이클로버Z'의 의상과 소품을 흉내 낸 것이라는 주장인데 '특정 부분의 유사성만을 놓고 표절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벼락 인기과 구설이 뒤섞인 '크레용팝 현상'에 가요계 관계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태규씨는 "크레용팝의 콘셉트는 표절이라기보다 기존에 있던 표현을 확장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베 논란 역시 불필요하게 과열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크레용팝의 일베 관련 사실 여부를 떠나 아이돌 그룹도 이제 이념적으로 소비하는 시대를 맞게 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