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의 증조부가 세운 탄광 등에서 강제 노역한 한인들의 참혹한 수난사가 공개됐다.
일본 근대사 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ㆍ56)는 최근 일제 강점기 일본내 조선인 광부들의 삶을 그린 을 일본에서 출판했다.
"돼지우리 같은 숙소에서 먹고 자며 하루 16∼17시간을 일했지만 월급은 20엔이 채 안됐다. 케이블선으로 얻어 맞아 생긴 상처에서는 피고름 냄새가 진동했다."
다케우치는 아소 부총리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麻生太吉)가 운영하던 아소탄광에서 일하던 한인들의 모습을 '착취지옥'이라 표현했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생산명령이 내려오면 할당량을 채우기 전까지는 갱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탄광 측은 수시로 폭력을 사용했고 부상자를 방치하기 일쑤였다. 이런 착취에 못이긴 조선인들이 1932년 아소계열 탄광에서 폭력과 학대, 혹사 금지, 최저임금 보장, 상해 및 해고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는 쟁의를 벌인 사실도 공개됐다.
아소계열 아카사카(赤坂) 탄광에서 일한 황학성씨는 "기숙사 환경이 형무소보다 열악했다"며 "휴일에 노무관리자가 조선인을 모아 놓고 이유 없이 때리는 등 일상적으로 구타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아소광업은 1994년 군수업체로 지정된 이후 사내에 '가미카제(神風)' 생산특수대를 조직, 조선인 광부들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중노동을 시켰다. 사고사, 병사, 구타 등으로 아소 계열의 탄광에서 숨진 조선인만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소그룹은 1870년대 후쿠오카현 지쿠호에서 석탄 채굴을 시작,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재벌로 성장했다. 1910년대 후반부터 해방직전까지 1만6,023명의 조선인을 강제 연행해 노역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책을 집필한 다케우치는 201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반도에서 일제에 강제 동원된 군인과 군속 26만명을 일본과 태평양 각 지역에 배치한 구체적인 현황을 공개, 최근 한국 법원의 일본기업 강제 징용 배상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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