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한 구성의 희곡과 좋은 연기자의 만남으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연극의 기본 가치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13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연극예술은 연기의 예술'임을 새삼 확인케 하는 반가운 작품이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1947년 발표한 원작 희곡은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현대 고전으로 자리매김했고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엘리아 카잔 연출의 동명 영화(1952)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몰락한 지주의 딸 블랑쉬(김소희)는 가난한 노동자의 도시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는 동생 스텔라(김하영)를 찾는다. 모든 것을 잃고 남은 것은 허영심뿐인 블랑쉬는 삶의 의미를 현실의 쾌락에 두고 있는 스텔라의 남편 스탠리(이승헌)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스탠리는 고고한 척 가식을 일삼는 블랑쉬의 과거를 캐내고자 끊임없이 극단의 상황을 연출한다.
평범한 가정 비극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연극은 단순히 탐미적이고 퇴폐적인 낭만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블랑쉬와 스탠리의 긴장 관계는 시대성에 근거한다. 블랑쉬는 교양을 중시하는 과거지향적 인물이며 스탠리는 본능적 욕구에 충실한 현재지향적 캐릭터다. 특히 개인적 일상성보다 추상적 담론을 추구하는 연희단거리패(예술감독 이윤택) 배우들이 참여한 덕분에 공연은 독특한 색채를 띠었다.
다소 과장된 듯한 몸짓과 말투의 이 극단 대표 여배우 김소희의 블랑쉬는 광기를 보이며 복합적인 심리를 나타내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설득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블랑쉬는 도도한 가식의 느낌보다는 시대 변화가 초래한 절망적 피해자의 인상이 강했다.
에너지 강한 배우 이승헌의 스탠리 역시 매 등장마다 강력한 잔상을 남겼다. 배우들의 집중력 덕분에 인터미션이 없는 2시간 20여분의 공연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명동예술극장은 지난해 가을 30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돼 호평을 얻은 이 연극을 '좋은 무대 여건과 제작 환경을 대학로 극단에 제공한다'는 취지로 올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 660석 규모로 공연장의 크기가 커진 만큼 무대 디자인의 시각적 효과보다 여전히 배우들의 대사 등 청각적 효과에 의존하고 있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은 9월 1일까지. 연출 채윤일. 1644-2003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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