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 목표는 최고의 피아노를 만들고, 최고의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청중과의 교감임을 깨달았죠. 피아노 제작을 포기하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게자 안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2009년)의 입상 경력과 함께 "정확하면서도 개성 있는 음향적 해석의 연주"(음악 칼럼니스트 박제성)라는 평을 듣는 피아니스트 이진상(32)씨는 지난해 '스타인웨이 공장에 출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얻었다. 작년 9월 세계적 피아노 제조사인 독일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본사에 채용돼 피아노 제작에 참여한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3년 간으로 계획했던 공장 근무를 6개월 만에 그만뒀다.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독주회를 앞두고 거주지인 비엔나에서 일시 귀국한 그를 16일 만났다. 그는 "조율사의 삶을 살아 보니 한 음 한 음 좋은 빛깔을 내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복합적인 조건이 만족될 때라야 감동적인 연주가 완성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직접 조율을 배우고 악기를 제작해 악기 때문에 겪는 피아니스트의 고충을 덜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무엇이 더 큰 음악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니 역시 저는 무대에 서는 게 우선이겠더군요."
비록 단기 경험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에게 조율사의 길은 어린 시절부터 키워 왔던 꿈이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소리 나는 상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릴 때는 조율사라는 직업을 모르잖아요. 피아노라는 악기를 들여다 보고 싶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죠." 그는 6개월 간 오전에 회사로 출근해 나무를 잘라 건조하고 조율하는 과정까지 피아노 제작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익히고 오후에는 연주 연습을 하는 2개의 삶을 살았다. 철저히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토니(Tony)라는 이름의 조율사의 삶을 구분하고자 최근까지 페이스북 계정도 2개를 사용하며 각기 다른 인맥 관리를 해 왔다.
그가 피아노 제작에 관심을 가졌던 또 다른 이유는 다니엘 바렌보임이나 마리아 주앙 피르스처럼 피아니스트로서는 작은 손을 가져서다. 손이 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칠 때면 미스터치가 많아져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는 그는 "작은 손을 위한 피아노를 창안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손이 다른데 음계의 크기가 모두 같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독일 피아노가 유명하다 보니 건반의 무게감도 독일 연주자 기준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을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작품 142로 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손이 작지만 손가락의 유연성이 좋은 그의 정교한 연주가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이씨는 이번 연주와 내년 독주회에서 연주할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작품 90을 묶어 라이브 음반으로 발매할 예정이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리스트의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혼례'도 연주한다.
"나만의 시간이 많고 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어 택시 운전사를 하고 싶었다"는 이씨는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게 낯설다고 한다. "물론 피아노를 통한 독백으로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좋죠. 연주에서 느끼는 감정적 체험은 관객 각자의 몫이겠지만 제가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니 역시 조율사의 꿈은 잠시 서랍 안에 넣어둬야겠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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