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락가락하는 원칙4년 전도 효율화 명분 분리 이후 민영화 좌절되자 '반관반민' 몸집만 더 커져● 통합이후가 더 문제인적 통합·민간부문 축소… 산은금융지주 해체 후자회사 처리 등 난항 선박금융公 백지화도 논란
찢어놓더니 다시 붙였다. 그때마다 효율이란 원칙을 내세웠지만 기실 정권의 입김 탓이다. 4년간 지지고 볶던 민영화 추진 논의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갔고, 조선업을 돕겠다는 공약은 후퇴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현재 처지다. 정책금융 개편에 정작 정책의 원칙과 철학이 실종되다 보니 잡음과 험로만 남았다.
19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재통합 및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체제 유지 등을 담은 정책금융체계 개편안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다음주 공식 발표한다. 정부 관계자는 "마무리 단계인 개편안은 내주 공개된다"고 말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산은은 공사를 흡수통합하고, 민영화를 전제로 만든 산은금융지주도 해체한다. 그간 분산됐던 정책금융은 산은으로 일원화하고, 벤처ㆍ중소기업성장 환경 조성을 위한 성장사다리펀드 업무와 중소기업 지원 업무 등 공사의 대내 주요 지원 기능도 산은이 넘겨받는 것이다. 다만 선박, 항공기, 자원개발, 인프라 분야 등 대외 정책금융 기능은 수출입은행이 가져간다.
이번 통합은 정책금융의 효율화가 명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 분리할 때와 똑 같은 논리다. 당시 정부는 국책은행인 산은이 20년간 민간금융시장에 침투해 금융질서를 교란하고 있다고 봤다. 산은은 예금도 받고 대출을 해주는 것도 모자라 외국환, 투자은행(IB) 업무, 방카슈랑스 등 업권을 넘나들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정부는 정책금융만 전담하는 공사를 출범시켰고, 산은은 아예 민영화해 국제적인 IB로 키운다는 정책 방향까지 정했다.
하지만 산은 민영화는 좌절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목을 잡은데다 대표적인 MB맨인 강만수 전 산은금융 회장의 무리한 민영화 추진에 반발한 정치권의 압력이 가중된 탓이다. 그 사이 산은은 예금이자를 더 주는 식(다이렉트뱅킹)으로 세를 불리는 한편 국책은행으로서의 지위도 누리면서 정책금융까지 수행했다. '반관반민'의 몸집만 잔뜩 키운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민간 영역이 너무 확대돼 민영화 추진 전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분리할 때도, 다시 통합할 때도 같은 원칙을 내세우니 원칙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단순 기능 조정 역시 무원칙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산은과 정책금융공사뿐 아니라 신보와 기보, 중소기업진흥공단, 수은과 무역보험공사 등 대내, 대외 정책금융 전반의 기능 재편이 필요한데, 기능 조정은 사장됐다"고 꼬집었다.
산은의 이전 체제로의 회귀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유기적인 인적 통합부터 산은의 민간 영역 축소, 선박금융공사 설립 등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정책금융공사는 4년간 매년 직원을 늘려 현재 임직원 수는 4배 가까이 증가한 353명에 달한다. 고용이 승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을 지울 수는 없다.
산은금융지주가 해체되면서 KDB대우증권과 KDB생명 등 자회사들의 처리도 골칫거리다. 정부는 순차적으로 매각하되 대우증권의 경우 우리투자증권 매각이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매각 시기를 조절하기로 했다지만, 매각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박금융공사의 설립과 관련된 논란이 커질 전망.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논란 등으로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선박금융 관련 부서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공약 포기' 불만과 함께 지역이기주의 등의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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