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수입차 업체 사장이 고전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이동이어서, 인사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박동훈(사진) 폭스바겐 코리아 사장을 내달 1일자로 영업본부장(부사장급)에 임명한다고 19일 밝혔다.
박 사장은 우리나라 수입차 업계의 대표적 스타CEO. 1989년 한진건설 볼보 사업부장을 맡은 이래 줄곧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잔뼈 굵었으며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등과 함께 수입차 업계 대부로 꼽히기도 한다. 특히 2005년 폭스바겐 코리아 설립멤버로 참여, 폭풍성장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박 사장 영입에 대해 르노삼성 측은 판매부진으로 망가진 영업조직을 쇄신하고, 호평 받고 있는 SM5 TCE와 SM5 플래티넘 등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대중화를 만들어낸 저력을 르노삼성에서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박 사장이 왜 폭스바겐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박 사장은 가장 잘 나가는 수입차 CEO 가운데 한 명"이라며 "고전하는 르노삼성의 영업책임자로 굳이 갈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박 사장은 불과 한 달 여전인 지난달 초 열렸던 폭스바겐 신차(7세대 골프) 출시 행사장에서 매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터라, 그의 갑작스런 이직은 더욱 의아해 보인다.
업계는 일단 독일본사와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폭스바겐이 국내에서 빠른 속도로 커지게 되자, 독일본사가 직접 컨트롤하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박 사장과 갈등이 누적됐다는 분석이다.
사실 폭스바겐은 최근 들어 국내 시장에서 '폭풍성장'을 이어왔다. 2005년 1,635대였던 판매량은 지난해 1만8,395대로 무려 11배 이상 성장했고, 특히 지난달에는 벤츠를 제치고 BMW에 이어 수입차 업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고속성장의 1등 공신이 박 사장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코리아의 규모가 커지자 독일본사는 직접 통제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처음엔 현지 경영차원에서 자율권을 주다가도 해외지사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본사가 직접 관할하려는 건 외국계 기업의 공통된 특징"이라며 "폭스바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폭스바겐 코리아의 모기업 격인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에 독일인 CEO와 CFO가 부임한 뒤, 경영방식을 놓고 기존 임직원들과 갈등을 겪었고 적지 않은 인원이 이직을 하기도 했다. 박 사장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때문에 그의 이직은 시간문제였다는 해석도 있다.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도 "폭스바겐 코리아의 경우 사장이 직접 결정해서 추진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의 르노삼성행은 자발적 이직 형식이긴 하지만, 결국은 토사구팽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