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中産層)으로 번역된 영어 '미들클래스(Middle Class)'의 의미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변주돼왔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영국인 제임스 브래드쇼라는 인물이 산업혁명기였던 1745년 의회보고서에서 이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 때는 사회경제적으로 대토지를 소유한 전통귀족과 소작농 사이에 새로 부상한 신흥계층을 가리켰다. 상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 부르주아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 근대의 미들클래스는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전통귀족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를 가리키기도 했다. 프랑스혁명을 지원한 세력을 부르주아, 곧 미들클래스라고 할 경우는 자본가계층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들클래스의 현대적 의미를 규정한 문건으론 1913년 영국 중앙호적등기소의 보고서가 꼽힌다. 미들클래스를 '상부계층(The Upper Class)'과 '근로계층(The Working Class)' 사이의 전문가, 관리자, 고위 공무원 등으로 꼽았다.
▲ 이렇게 보면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들클래스는 소득과 재산, 지성과 라이프 스타일, 영향력 등에서 사회 상층부를 지칭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 범위는 근년 들어 정치적 필요나 정책적 편의를 위해 크게 확대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통적 개념과 관계없이 중위 가구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규정하면서 기계적으로 국가 인구의 60% 내외를 미들클래스에 흡수시킨 게 대표적 예다.
▲ 하지만 국내 일반인들이 중산층이라는 번역용어에서 느끼는 정체성은 OECD 기준보다 훨씬 상층부를 가리켰던 전통적 의미에 가까운 것 같다.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급 500만원, 2,000㏄급 중형차, 예금잔고 1억원 이상이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조건이라는 자료가 얼마 전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증세 대상인 중산층 기준을 연봉 3,450만원으로 잡았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의 실책도 실책이지만, 중산층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현실의 괴리에 따른 진통이 불거진 면도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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