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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7> 언론보도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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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 <7> 언론보도 그 후

입력
2013.08.1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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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그렇게 얘기해요? 많이 변했다고? 글쎄요, 우리들은 개학해서 선배들 만날 일이 벌써부터 걱정인데요."

부산의 한 대학교 체육학과 1학년 김경수(19ㆍ가명)씨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지만 여름방학 동안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학교 앞 커피전문점 등에는 재학생 할인 혜택이 있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에게 좋은 모임 장소지만 김씨가 학과 동기들과 정하는 약속 장소에서 학교 부근은 항상 제외다. 혹여라도 선배들을 마주칠까 두려워서다.

이 학과에서는 지난 4월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군기를 잡는다며 가혹행위를 해 박모(19ㆍ여)씨가 자퇴를 한 사실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어깨동무를 하고 쪼그려 앉아 뛰기, 바닥에 머리를 댄 채 양손을 허리 뒤로 올리고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이른바 '원산폭격'까지 1시간 넘는 공포의 얼차려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차례 이어졌다. 박씨는 얼차려 도중 실신하면서 바닥에 얼굴을 부딪쳐 앞니 2개가 부러졌다. 결국 박씨는 자퇴를 선택했고 경찰은 가혹행위를 한 선배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학교측은 총장 명의의 사과문까지 내며 학내 선후배 사이의 군대식 얼차려 문화를 없애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이 학과에서는 얼차려 문화가 사라졌을까?

학교측은 "얼차려 문화는 사라졌고 당시 사건도 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공언했다. 방학 동안에도 선후배간 자연스러운 식사나 술자리를 통해 후배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가혹행위를 한 선배 18명은 학교에서 70~80시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교 A씨는 "체육학과 특성 상 운동시간에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체력단련을 시키는 것 외에 구타나 얼차려는 절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배들은 "변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이 보도된 후에도 체력단련을 가장한 얼차려가 여전히 있었고, 선배에 대한 예의라며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하도록 하거나 원치 않는 행사도 무조건 참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사라진 것은 단 하나, 신입생들에게 항상 따라다니던 단체 소집 후 얼차려뿐이었다. 선배들은 체력단련과 선후배간 예의를 '학과 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후배들은 전통을 가장한 폭력으로 여기고 있다.

이 학과의 또 다른 1학년생도 "체력단련을 위한 운동인지 그것을 가장한 얼차려인지 구분을 못하겠냐"며 "단지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대답이 좀 늦었다는 이유로 선착순 달리기에 팔 굽혀 펴기, 쪼그려 앉아 뛰기 등을 시키는 것이 운동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털어놨다.

지난해 11월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발단은 홍이식 전남 화순군수가 당시 최모(55ㆍ여) 총무과장을 포함한 간부 공무원 5명을 공무원 한마음 행사에서 '무릎 꿇고 손들기' 얼차려를 시킨 사진이 공개된 것이었다. 당시 홍 군수는 "장기자랑을 하는데 직원들이 없는 것은 총무과장이 직원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탓"이라며 최 과장 등에게 벌서기 체벌을 시켰다.

학교에서도 사라진 무릎 꿇고 손들기 체벌이 공직사회에서 일어 났고 그 주체가 군수라는 사실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홍 군수는 공식 사과했고, 화순군청 관계자는 "당시 군수가 장난 삼아 해본 이벤트였다. 군청에 얼차려 등 군대 문화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급 공무원들의 대답은 달랐다. 군청 내에서는 공무원 인사권을 쥔 군수와 고위 간부의 말이 곧 법이어서 "까라면 까라"는 식의 군대식 상명하복이 통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당시 공무원 체벌도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터져 나온 일부일 뿐이었고 이 같은 분위기는 지금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화순군의 한 공무원은 "문제를 제기해봐야 제기한 사람에게 불이익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공무원들이 다들 쉬쉬하고 있다"며 "화순군처럼 규모가 작은 지자체는 특히나 상급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군대와도 같은 위계질서와 강압적 지시가 끊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지난 3월 신입생들에 대한 가혹행위로 논란이 일었던 수도권의 한 사립 예술대학교에서도 군대문화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당시 MT에서 벌어진 선배들의 가혹행위를 제보했던 B(19)씨는 "그런 일 이제 없다.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짧은 말을 끝으로 취재를 거부했지만 학교 주변에서 만난 다른 신입생들은 여전한 학교 내 군대 문화의 존재에 힘겨워했다. 신입생 C(19)씨는 "복도에서 선배를 지나칠 때 '선배님, 먼저 지나가겠습니다'하고 물은 뒤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같이 걸어도 선배보다 항상 뒤를 따라가야 한다"며 "TV 프로그램을 보면 군대에서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던데 대학생활이 군대보다 더할 줄은 몰랐다"고 한탄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올해 초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교수님들과 학생회 등을 통해 변화를 주문했지만 모든 일을 학교측이 통제하기는 어렵다"면서 "대학생들은 성인이어서 학생들 스스로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통과의례식 얼차려는 사실상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전수되는 것이어서 단기간에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 공유식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우리 사회에서 군대문화가 서서히 약화되고 있지만 도제 시스템 형태로 기술을 배우는 예술 분야나 상명하복 관계가 분명한 집단에서는 아직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배우는 기술을 가능한 매뉴얼화하고 사회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이런 집단의 변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는 "구성원들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군사주의 의식에 대해 성찰하고 일상적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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