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정상회의인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다. 미 오바마 대통령의 제창으로 최대 국제안보 위협인 핵테러를 방지하여 세계평화를 보장하기 개최된 역사적인 정상회의이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서는 북핵문제도 다루지 않는 핵회의를 왜 하느냐, 핵테러는 미국문제인데 우리가 왜 들러리를 서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이런 인식은 지금도 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는 2014년 3차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 2016년 4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과 있게 준비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핵안보정상회의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잊혀진 외교행사가 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가 급한데, 우리가 왜 세계평화와 핵테러와 지역분쟁까지 걱정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있다.
과연 우리의 국익은 한반도 내 평화와 번영과 복지에 그치는가. 물론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북한의 핵위협 하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달성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가 한반도국가인 동시에 세계국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연 세계평화와 번영 없이, 국제사회와 통상 없이 한국의 국익이 보장될 수 있을까. 한국의 특성이 이를 말한다. 한국은 자원빈국으로서 세계와 통상 없이는 살수 없는 '통상국가'이다. 우리는 무역규모 1조 달러의 세계 9위 통상대국, 경제규모 1조 달러의 15위 경제대국임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 100%, 에너지수입의존도 97% 등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통상 없는 한국은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번영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경제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통상외교, 자원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자원외교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세계적인 공동번영을 위한 개도국 대상의 경제협력외교도 더욱 확대해야 한다.
한국이 개방적인 세계국가로 변모함에 따라 세계평화도 우리의 핵심 국익이 되었다. 특히 세계화 시대에 국제분쟁과 국제테러가 발생한다면 그 발생지가 어디든 국제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 개방 수준이 남다르게 높은 우리나라는 더 큰 경제적, 인적 피해에 노출된다. 재외동포 700만명, 연간 해외여행객 1,300만명의 생명과 재산도 직접적인 피해 대상이다. 더욱이 핵사고와 핵테러는 국경과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은 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세계적인 중견국으로 등장하였다. 중견국으로서 국익의 범위를 세계로 확장하고, 이에 따른 세계적 책임도 떠안게 되었다. 한국은 종래 국제사회의 안보지원과 경제지원의 최대 수혜국이었지만, 지금은 국제사회의 신흥 중견국가로서 세계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보은하려고 한다.
과거에는 소수 강대국이 독점적으로 세계질서를 제공하고 평화를 보장하였다. 미국은 경제위기로 인해 더 이상 홀로 세계경찰 역할을 담당할 여력이 없고, 중국, 러시아는 군사강국이지만 세계평화를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 설사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의를 믿기 어렵다. 우리의 세계적 국익 때문에 유엔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중견국외교를 통해 세계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고 국제경제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우리의 핵심 국익이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가 높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중견국으로서 가교외교 역량을 높이 산다. 한국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개방과 평화를 누구보다 중시한다는 점도 국제사회의 기대를 받는 배경이다.
최근 한국외교는 부흥기를 맞이한 듯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서 한반도외교가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하반기 들어 다자외교 시즌을 맞이하여, 한국의 중견국외교와 세계외교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한다. 세계평화와 번영도 한국의 핵심국익이기 때문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