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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위한 웃돈, 미리 내고 갑니다"

입력
2013.08.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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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작은 토스트 가게 '토스트와 주먹밥'. 돈을 내지 않고 토스트를 먹고 나가는 한 학생이 1,000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다. 형편이 어려운 이 학생의 토스트 값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미리 가게에 지불해 적립해둔 쿠폰으로 계산됐고, 학생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우유값을 지불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1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최정원(52)씨는 "가끔 와서 공짜 토스트를 먹던 그 학생이 '나도 다른 배고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기부를 했다"며 "학생의 고사리 같은 손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최씨는 "누군가의 도움을 직접 체험하면서 저절로 나눔을 배운 것"이라며 "이것이야말로 기부의 선순환"이라고 덧붙였다.

이 뭉클한 경험은 최씨가 한달 째 이어가고 있는 '미리내' 운동에서 얻는 기쁨이다. 글자 그대로 '미리 낸다'는 의미의 이 릴레이 기부는 먼저 와서 식사를 한 손님들이 자신의 음식값을 지불하면서, 가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이웃들을 위해 식사값을 기부하는 것. 주인이 기부받은 금액만큼 미리내 쿠폰을 표시해 두면 필요한 사람은 조건 없이 쿠폰을 이용할 수 있다. 19일 최씨 가게 입구에 내걸린 '미리내 가게' 안내판에는 '라면 1개(3,000원)', '날치알 주먹밥 1개(2,000원)'가 적립돼 있다고 적혀있었다.

앞선 손님의 선행으로 한 끼를 해결한 사람은 여건이 될 때 들러 다른 사람을 위해 쿠폰을 적립해놓고 가면 된다. 익명의 기부자들에 의해 저절로 돌아가는 신개념 나눔 운동인 셈이다.

다소 생소한 이 릴레이 나눔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올해 초부터다. 평소 나눔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김준호 동서울대 전기정보제어공학과 교수가 외국 여행 중에 우연히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맡겨 둔 커피)'운동을 접하고 한국형으로 바꾼 것이다. 카페 손님들이 커피값을 내 노숙인들이 무료로 마실 수 있도록 한 이 커피 기부 운동은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시작돼 미국, 캐나다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김 교수는 우선 '서스펜디드'라는 생소한 이름을 친숙하게 바꾸고 자비를 털어 온라인에 미리내 운동본부 사이트를 만들었다. SNS를 통해 운동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할 가게를 모집한 지 8개월째. 지난 6월 경남 산청의 한 커피 전문점이 첫 발을 내디딘 후 현재까지 전국 80여개 가게들이 '미리내 가게' 안내판을 내걸었다. 김 교수는 "카페뿐 아니라 음식점, 목욕탕, 미용실 등 소규모 가게들이 한 달에 20개 이상 동참을 선언하며 동네에 착한 기부 문화를 이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작한 지 한 달이 안된 최씨의 가게에서 지금까지 사용된 쿠폰은 모두 27장. 이 중 대부분은 적립되고 하루가 채 안 돼 사용됐다. 하루에 한 장 꼴로 쿠폰이 적립되고 그 날 한 사람 이상이 이용한 것. 최씨는 "표지판을 보고 들어왔다가도 공짜 음식이라고 하면 주저했지만 '누가 돈을 대신 내주고 갔으니 편하게 이용하면 된다'고 하니 점차 부담 없이 쿠폰을 쓰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리내 운동에 동참하고 싶은 가게, 그 가게를 찾아가고 싶은 손님은 미리내 홈페이지(pinterest.com/mirinaeso)를 방문하면 된다.

글ㆍ사진=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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