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42)씨는 지난달 이사했다. 결혼하고 8년 동안 세 번째 이사다. 이번에도 전셋집이지만 집을 살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김씨는 연봉 1억원의 잘나가는 금융맨이다. 그가 집을 안 사는 이유는 단 하나.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이사 다니기 싫으니 언젠가는 사겠죠. 그런데 지금 아파트 가격은 너무 비싸요. 현재 수준보다 1억원은 떨어져야 살 겁니다."
정부가 온갖 주택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집값은 수년째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사용료에 해당하는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일각의 분석처럼 우리 국민들의 주택에 대한 관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일까.
한국일보는 여론조사기관 '틸리언'을 통해 우리나라 20대부터 50대 이상 성인 1,000명에게 '집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조사는 '집을 살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집값 ▦부동산 경기 ▦전∙월세 전환 등 주택 시장 이슈에 대해 국민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로 설계됐다.
조사결과 응답자들 대다수가 조사 전 예상과 달리 주택경기 침체에도 여전히 집을 사고 싶어했다. "주택을 구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1%가 집을 사겠다고 대답했다. 특히 무주택자의 경우는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77%에 달했다. 유주택자의 68%도 "넓은 집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주택을 구입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20, 30대 무주택자는 응답자의 84%가 "집을 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집을 소유하려는 생각이 기성세대 보다 적다'는 통념과 정반대 결과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인식했다. 응답자의 90%는 "현재 우리나라 집값이 비싸다"고 답했다. "비싸지 않다"는 응답은 9.7%에 그쳤다. 비싸다고 대답한 사람에게 "얼마나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가?"라고 묻자 47%가 현재보다 20% 이상 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16~20% 라는 대답도 19%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중 81%는 우리나라 주택 시장 상황이 일본 버블붕괴와 비슷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삶이 안정돼야 집을 살 수 있는 데, 최근 젊은 층엔 비정규직이 많고 정규직도 40대 후반에는 퇴사하기 때문에 대다수 주택구입 희망자들이 주택을 살 능력이 없다"며 "현재의 부동산 장기침체의 해법은 이런 괴리를 메워주려는 고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