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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1차→ 2차… 단가인하 결국엔 '을중의 을'에 떠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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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1차→ 2차… 단가인하 결국엔 '을중의 을'에 떠넘겨

입력
2013.08.1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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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시에서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유모(60) 사장은 올해 초 황당한 경험을 했다. 거래처인 2차 협력사의 구매담당자로부터 갑작스럽게 납품단가를 깎겠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단가협상 시기도 아니었고, 협의도 아닌 일방적 통보였다. 알아봤더니 새로 부임한 구매담당자가 본인의 실적을 늘리기 위해 단가인하를 요구한 것이었다. 유씨는 "안 그래도 몇 년째 단가가 묶여 있는데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또 단가를 후려치는 것은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억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또 한 번 단가인하를 경험해야 했다. 이번에는 이유가 달랐다. 1차 협력사가 모기업 최저가 경쟁입찰에 참여해 낙찰까지 받았지만, 모기업 구매부서에서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의 대금을 요구해온 것이다. 1차 협력사는 그로 인해 생긴 손실을 2차 협력사의 단가인하로 메웠고, 2차 협력사는 으레 그래왔듯이 3차 협력사인 유 사장의 회사를 쥐어짜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선 경쟁입찰을 하는 모기업이 최저가를 제시한 다른 업체의 가격을 고의적으로 1차 협력사에게 알려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들었다"며 "더 낮은 금액으로 입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낙찰을 받아 발생한 1차 협력업체의 피해는 결국 2차 협력업체를 거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말 그대로 '슈퍼 을(乙)'인 3차 협력사들로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게 유 사장의 설명이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렇게 떠안은 손실은 결국 4차, 5차 협력업체로 이어지게 된다.

고질적인 전속거래 관행도 3차 협력업체들을 눈물짓게 만든다. 경기 화성시에서 휴대폰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2) 사장은 2008년 건강악화로 기업을 정리했다가 지난해 말 사업을 재개했다. 그는 십 수 곳의 업체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거래를 트려 애썼고, 그 중 한 곳과 이야기가 잘 풀려 계약서 사인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석연찮은 이유로 계약은 무산됐다. 10여 년 전,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납품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경쟁업체에 기술이 유출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급변하는 휴대폰 시장에서 10년 전 기술은 더 이상 유출을 고민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과거 납품경험까지 따지는, 사실상의 '거래 연좌제'인 셈이다.

김 사장은 "이미 거래가 끊긴 기업들도 전속거래 관행에 발이 묶이는데 모기업과 현재 거래중인 협력사들은 경쟁사와 복수거래를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1, 2차 협력사들과 달리, 3차 협력사들은 제품별 단가가 매우 낮아 박리다매 방식을 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전속거래 관행을 없애는 것은 3차 협력사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나 대기업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면 서로 쓰려고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지만, 이는 실상을 전혀 모르는 애기다. 우리나라 산업관행 자체가 기술향상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광주시에서 인터넷 케이블 모뎀 부품을 생산하는 한 업체는 지난해 모뎀 조립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해냈다. 이 회사 이모(47) 대표는 아이디어가 상용화되면 조립공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게 되고, 이는 곧 제조원가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기업부터 3차 협력사까지 모든 업체들이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문제는 아이디어 실현에 필요한 부품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고심하던 이씨는 올해 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합동 연구개발(R&D)이 활발히 이뤄진다는 정보를 듣고 직접 모기업 관계자를 찾아 나섰지만, 헛수고였다. '슈퍼 을'인 3차 협력업체가 1ㆍ2차 업체를 건너 뛰고 '슈퍼 갑'인 원청 대기업 직원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이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합동 R&D사업을 펼친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며 "합동 R&D는 어디까지나 1차 협력사와 극소수 2차 협력사만 누리는 특혜일 뿐 3차 협력사가 대기업과 접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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