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른바 '역제의 전술'은 남측 구상을 교란시키고 회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형적인 외교 및 회담방식이다. 지난 4월3일 일방적인 통행제한 조치로 '개성공단 사태'를 일으킨 이후의 경과만 보더라도 북측은 고비마다 각종 역제안을 반복했다.
북한은 그 동안 개성공단 물품 반출에 국한해 당국간 회담을 하자는 남측 제의에 응답하지 않다가 지난 6월6일 남북관계 전반을 포괄하는 현안들을 한꺼번에 논의하자는 역제의를 했다. 개성공단 정상화 및 금강산 관광재개는 물론, 6ㆍ15선언 13주년 및 7ㆍ4공동성명 41주년 기념행사 공동개최 등 내용만 보면 명분상 남측이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 이전 정부 때부터 막혀있던 남북현안을 망라해 남측의 허를 찌른 것이다.
북측은 이 전술을 운용하면서 회담일정을 십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북한은 당시 조평통 특별담화에서 회담장소와 시일에 대해 "남측이 편리한대로 정하면 될 것"이라고 우리측에 일임했다. 이에 우리 측이 이를 위한 장관급 회담을 12일 서울로 제의하자 북측은 그러나 하루가 지나 실무회담을 개성에서 하자고 역제의하고 나섰다. 자남산여관 등에 우리 대표단을 묵게 하면서 향후 본회담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겠다는 의도로 읽혔다.
북측은 이번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도 장소문제를 두고서 역제의를 거듭했다. 우리 정부가 판문점을 제시하자 북한은 개성공단을 고집했고, 정부가 다시 판문점 또는 경의선 남측출입사무소를 대안으로 제시하자 이번엔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으로 수정 제의했다.
수석대표의 급(級) 문제야말로 남측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으려는 북측 의지가 강하게 배어났다. 6월12일 서울에서 열 예정이던 남북장관급회담은 이 문제로 결국 무산됐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도 북측은 격 문제로 샅바싸움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대화 역사를 보면 대화 의제나 회담대표, 일정과 장소 등을 놓고 북측이 끼워팔기용 역제의를 활용하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며 "자신들의 의도대로 판을 만들기 위해 유리한 것을 먼저 던져놓고 흥정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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