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밴(VANㆍ부가가치통신망) 대리점을 고생 끝에 찾았다. 2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가니 10평 남짓한 공간에 4명의 직원이 모여 앉아 일하고 있었다. 전국 2,000여 곳에서 약 4만명이 종사하고 있는 밴 대리점의 전형적 모습이다.
직원 최국남(44)씨가 외근에 나서길래 따라 나섰다. 최 씨는 경기 광명사거리 인근에 최근 문을 연 정육식당에 가서 새 주인으로부터 가맹점 가입에 필요한 서류를 받고 8개 카드사의 가맹점 가입 신청서를 꺼내 일일이 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가맹점주에게서 받은 서류를 각각의 카드사를 방문해 접수하고, 카드사가 가맹점 가입 승인을 내줘야 비로소 카드 결제가 가능해 진다. 최 씨는 "10년 전만해도 이렇게 카드 가맹점 한 곳 모집하면 8개 카드사부터 받는 수수료가 총 4만원이었는데, 지금은 2,500원까지 줄었다"며 "복사비 교통비 등을 빼고 나면 가맹점 모집 대행일은 적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일이라 평소보다 일감이 적다고 설명했지만, 최씨가 이동하는 도중 쉴새 없이 전화 벨이 울렸다. 대부분 "글씨가 안 찍혀 나온다, 전표용지가 부족하다" 등 가맹점주로부터 쉴새 없이 유지 보수 요구가 쏟아졌다. "사실상 휴무가 없다고 봐야죠. 결제와 관련된 민감한 일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늘 켜놓고 있어야 됩니다."이렇게 최씨 혼자 담당하는 가맹점은 300곳이 넘는다. 밴 대리점 협회에 따르면 직원들의 급여는 계속 줄어들어 현재 남자 직원 기준 월 평균 200만원 수준이다.
최씨는 양평동에 위치한 음식점에서 기존 단말기를 결제속도가 빠른 신형으로 교체하자마자, 용지가 떨어져 결제내역을 인쇄할 수 없다는 전화를 받고 홍대 근처 악기상에 용지를 배달했다. 그제서야 총 30㎞가 넘는 오늘의 외근이 끝이 났다. 한 달에 한 번 전자패드에 서명하는 방식이 아닌 구형 단말기를 이용하는 가맹점을 방문해 결제전표를 수거하고, 전산에 입력한 뒤 보관하는 작업을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현금 없이 외출해도 전혀 불안할 필요 없는 우리나라만의 첨단 카드결제 환경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들 밴회사 직원들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23년 만에 밴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 수수료를 낮추려 하고 있다. 이에 밴업계는 "카드사들이 영세업체인 밴 대리점에 전가해 수익을 보전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밴 대리점들의 모임인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의 조영석 사무국장은 "카드사가 밴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더 낮춘다면 대리점은 어쩔 수 없이 그 동안 무상으로 보급하던 단말기를 유료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맹점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영세 상인을 보호하려던 수수료 개편 정책효과는 반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국장은 또 "카드사의 수익보전을 위해서는 카드사가 할인매장 등 대형가맹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 비용을 줄여야지 영세 밴 대리점에게 전가하는 것은 현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과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박성원 한국신용카드밴협회 사무국장도 "이번 수수료 체제개편으로 밴 수수료가 20% 인하된다고 해도 그 중 카드 가맹점들이 보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효과는 0.032%에 불과해 개편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밴수수료 개편 방안 논의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당초 계획은 공청회가 끝나고 8월 말까지 최종보고서를 마련해 올 하반기에 당국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었다"며 "7월 초에 있었던 공청회 이후 여전히 가닥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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