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거래 탓 할 말 못해… 교섭력 높일 제도 마련이 시급"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동반성장센터장
"3차 협력사들의 눈물은 교섭력 부족에서 나옵니다."
이동주(45) 중소기업연구원 동반성장센터장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늑장 결제관행 등 3차 협력사들이 고통 받는 근본적인 원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이 센터장은 3차 협력사들의 교섭력이 떨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전속거래 관행을 꼽았다. 협력사들이 한 군데 모기업과 거래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종속관계를 형성한다는 것. 이 센터장은 "거래선이 여러 군데 확보돼 있다면 협상테이블 위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며 "부당한 요구를 하는 모기업과 거래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대적으로 자금비축 여력이 작은 3차 협력사들에게 전속거래는 특히 치명적"이라며 "한 번 거래선이 틀어지면 도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거래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또 우리사회가 동반성장을 상생이 아닌 시혜와 수혜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 교섭력 향상의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기업들은 동반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생색을 내고 협력사들은 정당한 요구를 할 때에도 눈치를 봐야 한다"며 "협력사들이 대기업의 희생으로 혜택을 입고 있다는 인식이 산업계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에 여태껏 협력사들의 교섭력 확보를 위한 제도는 단 한 개도 나온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혜-수혜 관계 속에서는 모기업과의 거리가 멀수록 더욱 큰 고통을 받는다"며 "비교적 대기업과 접촉하기 쉬운 1ㆍ2차 협력사보다 3차 협력사들이 겪는 부당함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생과는 거리가 먼 기업내부의 평가문화도 3차 협력사들을 눈물 짓게 만든다. 기업의 개인성과지표(KPI)에 납품단가 인하 항목이 들어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 센터장은 "구매담당 임직원들은 단가인하를 성과평가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모기업부터 1ㆍ2차 구매담당자들이 모두 단가인하에 혈안이 돼 있으니 3차 협력사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KPI에 동반성장을 유도하는 항목을 넣는 등 기업들부터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가절감 이익 대기업이 독점… 거래업체도 공유할 수 있게"
조병선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
"현대 르노삼성 GM대우와 동시에 거래하는 협력사가 나와야 합니다."
조병선(54)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3차 협력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복수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히든챔피언 기업인 레오니(LEONI)를 예로 들었다. "레오니는 BMW 벤츠 아우디 등 다수의 완성차 회사와 거래하고 있다"며 "1차 협력사인 레오니의 거래처가 다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2ㆍ3차 협력사들의 거래선도 넓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동반성장지수 평가표에 복수거래 항목을 넣는 등 정책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또 "3차 협력사들은 이익공유의 혜택을 못 받고 있다"며 "원가절감으로 생겨난 이익이 대기업에게만 돌아가는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협력사들과 함께 '목표원가제'를 운영하고, 목표를 초과한 이익은 공유하고 있다. 목표원가제란 제품 설계과정에서부터 각 모듈 별 목표원가를 설정하는 것. 이때 목표했던 원가보다 싼 가격에 모듈이 완성되면, 원가절감으로 생겨난 이익을 거래기업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목표원가제도 하에서 원가절감은 협력사들만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모기업은 목표달성을 위해 협력업체에 기술자를 파견하는 등 공을 들인다. 또 이익배당률에 대해서도 사전계약을 맺어 3차 협력사들도 정당한 대가를 받는 등 국내에서 운영중인 성과공유제보다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몇 몇 국내기업들도 목표원가제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 산업계 전반에 정착되지 못했다.
조 교수는 마지막으로 정부-대기업-중소기업 합동 연구개발(R&D)과제에 3차 협력사들도 참여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대부분의 합동 R&D과제는 대기업이 발주하기 때문에 과도하게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3차 협력사들은 참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조 교수는 "정부가 직접 과제를 발굴하는 R&D사업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이 중심이 돼 과제를 진행하되, 1ㆍ2 ㆍ3차 협력사들도 일정비율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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