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P아파트 전용면적 59㎡(1층)는 6월 2억7,750만원에 팔렸다. 불과 한 달도 안돼 전세로 내놓은 같은 조건(1층 59㎡)의 아파트는 2억6,050만원에 세가 나갔다. 수치상 2,000만원만 투자하면 집을 가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에선 전셋값이 집값을 추월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수원시 영통구의 한 아파트(59㎡) 전세가격은 2억원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같은 조건의 급매물(1억9,000만원)보다 1,000만원이나 비쌌다.
치솟는 전셋값이 집값마저 위협하고 있다. 전세와 매매가 차이가 10% 내로 좁혀지면서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집을 사는 것보다 2년간 빌리는데 돈을 더 많이 지불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전세 품귀, 집값 추가 하락 우려가 맞물린 결과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격대비 전세가 비율은 57.3%로 최근 6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8년(38.7%)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6대 광역시의 매매가격대비 전세가 비율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 여긴 세입자들은 집을 사는 대신 전세 계약을 연장하고, 집주인들은 저금리 기조에 전세 매물을 월세로 전환하면서 이상 급등 현상을 빚은 것이다.
반면 매매시장은 2006년 이후 거듭 하락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만 반짝 반등했을 뿐이다. 올해도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로 3월부터 지역마다 아파트 가격이 수천 만원씩 올랐지만, 정작 4∙1 부동산 대책의 효과는 채 1달을 가지 못했다.
임병철 부동산114 책임연구원은 "예전엔 전세가 비율이 60%를 넘으면 전세수요가 매매수요로 바뀌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엔 주택시장 침체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추월하는 현상이 지속되리라고 보고 있다. 전세제도는 집주인이 목돈을 빌려(전세 공급) 집을 샀다가,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이득을 얻는 구조인데, 부동산경기의 장기 침체가 이런 메커니즘의 작동을 막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입자는 전셋값을 나중에 그대로 돌려받지만, 집주인은 세금, 주택 유지비, 감가상각비용(수리비 등) 등도 떠안아야 한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전세제도가 유지되려면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넘어서는 게 오히려 정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가격 역전이 국지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은 "나중에 돈을 돌려받기 때문에 전세를 선호하는데,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역전하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그대로 돌려준다는 보장도 없고, 경매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돈을 전부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택 소유욕이 강하고, '을' 입장인 전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아 역전 현상이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전세보다 월세가 주택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룸, 도시형생활주택 등 월세 물량이 늘면서 전세에 편중된 임대차 시장이 균형을 찾는다는 것이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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