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인으로서 정체성 혼란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한국을 알아가면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어요."
흑인 혼혈로 태어나 전쟁고아로 미국에 떠밀리듯 입양된 차이나 로빈슨(한국명 이영숙·57)씨. 왠지 서글프게만 들리는 그의 이력이지만 현재는 상황이 역전됐다. 미국에서 톱 모델로 활동중인 딸 샤넬 이만(23)을 잘 키워내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내달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가 출간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그는 "흑인 혼혈이자 한국인, 입양인인 나의 뿌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많은 혼란을 겪었다"며 "그러나 입양기관을 방문하고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입양이 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58년 전쟁 후 두 살이 되기도 전에 LA의 한 목사 가정으로 입양됐다. 흑인 빈민가에서 자라난 로빈슨씨는 흑인 혼혈임에도 아시아인이 많지 않았던 그곳에서 인종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칭 총'에 이름까지 더해 '칭 총 차이나'라는 놀림은 어린 시절 늘 그를 따라다녔다. 한국인 혼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3세 때다. 이후 한국과 부모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코리안블랙클럽(KBC)이라는 모임에 참석해 저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만났죠. 마음을 열고 대화는 나누면서 흑인·한국 문화를 모두 사랑하게 됐어요. 우리 스스로 '블라시안(Blasians)'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런 그가 주목을 받은 건 딸 때문이다. 2006년 포드 모델 선발대회에서 데뷔한 그녀의 딸 샤넬 이만은 안나 수이, 마크 제이콥스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모델로 런웨이를 밟았다. 이만은 미국의 유명 란제리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로 무대에 오르면서 두각을 보이더니 나오미 캠벨, 타이라 뱅크스 등의 뒤를 잇는 흑인모델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8년에는 톱 모델인 딸 덕분에 국내의 한 패션잡지에 의해 초청돼 화보 촬영을 하기도 했다. 쫓겨나듯 한국을 떠나왔던 그이기에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흑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한국을 떠난 지 50여 년 만에 딸로 인해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게 놀라웠다. 세상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의회흑인지도자재단(CBCF) 연차총회에도 딸과 함께 참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아직도 정체성 때문에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 거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두 문화의 장점을 합친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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