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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8월 19일] 북극의 자원 외교와 기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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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8월 19일] 북극의 자원 외교와 기초 연구

입력
2013.08.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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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영국의 교수 한 분이 동남아시아 대학과의 공동 연구를 위해 그곳 연구실을 둘러보고 돌아온 후 들려준 오래된 이야기가 기억난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고, 교육열도 높지 않은 국가라 대학의 시설이 형편없을 줄 알았는데, 실험실마다 일본 회사의 최신 장비가 설치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였다. 2001년 노벨상을 수상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시마즈'라는 회사를 포함해서 다양한 일본 기업이 동남아 대학들에게 엄청난 연구 장비를 무상으로 설치해 주고, 동시에 일본의 과학자들이 열대우림을 배경으로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 지역의 침략자였고, 전후에는 목재 산업을 통한 동남아 산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었지만, 연구 장비의 지원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일본은 평화와 번영을 제공하는 감사한 선진 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만일 목재나 석유와 같은 지하자원만을 얻을 요량으로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일본은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훨씬 전에 잃었을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북극 이사회'의 '정식 옵서버' 자격을 획득했다는 쾌거가 여러 언론 매체를 장식했다. 아시아에서 벗어나 선진국들의 각축장인 북극 오지에까지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또 언론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가능하게 된 북극해 항로 개발, 향후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 참여, 또 유럽 북미 아시아를 관통하는 군사적 요충지 확보의 교두보로서의 중요성도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단기적 이익만 추구해서는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제 외교적 노력이 성공하려면, 보이지 않는 과학기술의 발전 및 교류, 그리고 이를 통한 문화적 영향력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사실 과학자들에게 북극은 미개척의 연구지이자 기후변화의 시금석으로써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여름철 두세 달 잠시 자라는 식물이 나머지 계절에는 꽁꽁 얼어서 쌓인 엄청난 양의 탄소가 축적되어 있고, 추운 극지에서 자라는 미생물과 식물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곳이 북극이다. 만일 100년 후 우리나라의 평균 온도가 2도 정도 오른다면, 북극은 6~7도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땅속에 축적되어 있던 탄소가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나 메탄과 같은 강력한 온실 기체 상태로 발생되어 기후변화를 더 악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식물들이 더 잘 자라서 이 문제를 완화할 것인지도 과학자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 북극에 대한 많은 관심이 생기고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받게 된 배경에는 그 동안 이 지역에서 조용히 자신의 연구를 수행해 온 과학자들의 기여가 크다. 동시에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란 명제 또한 유감스럽게도 참이 아니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라는 군함에 동승해서 세계 여행을 한 후에 진화론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내놓은 배경에는 식민지 개발과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추구한 대영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거꾸로 과학적 발견이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에 제국이 사라진 지금도 영국의 영향력이 곳곳에 미치고 있다. 시대가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북극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덴마크 캐나다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과 대등한 대화를 원하고, 이곳 자원을 노리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하려면, 기초과학의 역할이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얼마 전 중국이 이 지역에서 석유 개발권을 따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대체 우리나라는 뭐하냐는 질책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성급히 돈만 쫓다 보면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는 국가로 이미지만 나빠질 가능성도 크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자원 외교에 성공한 듯이 보이나 실제로는 아프리카 각국에서 무리한 농경지 개발로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돈으로 바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기초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북극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지속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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