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열렸던 15일. 대검찰청 공안부가 오후 늦게 출입기자들에게 휴대폰으로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광복을 기념하는 뜻 기ㅐㅍ은 날에 8ㆍ15 행사를 빙자하여 도로 점거 등 불법 폭력시위가 발생, 300여명이 체포된 점에 대해 심히 유감의 뜻을 밝힌다.' 향후 합법 집회는 보장하되 불법 폭력시위는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공안기관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의 입장 발표는 사실을 호도한 후 이를 전제로 과도한 엄포를 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검찰은 집회 현장에 보이지도 않았던 '죽봉과 쇠파이프'를 언급한 것에서 보듯 이날 시위를 대규모 불법폭력시위로 단정했다. 그러나 현장을 취재한 동료 기자들의 얘기는 사뭇 달랐다. 도로 점거로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지자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를 쏘거나 연행했지만, 검찰이 언급한 과도한 폭력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들조차 검찰의 대응에 대해 "상당히 '오버'한 것 같다"고 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결연하게도 '주동한 배후세력을 밝혀내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니, 결국 '폭력이 없는 폭력 시위를 엄단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한 셈이다.
이날 검찰의 대응을 두고 청와대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등 갖가지 뒷말이 무성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청와대 지시설'까지 나왔다. 이날 오전 대통령이 참석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서 기습 점거 시위가 벌어지자 청와대가 강경한 입장 발표를 종용했다는 설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시위가 두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2008년 촛불 집회의 트라우마를 애써 불식시키려는 '공안 당국'의 눈치 빠른 행동으로 보일 만하다.
지난해 검란(檢亂) 사태 등 홍역을 치른 검찰은 지금 강도 높은 개혁의 도정에 있다. 길의 끝에는 정치권 등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는 '검찰권의 독립'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검찰 역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정권 눈치보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괜한 뒷말만 낳은 이번 일이 그 힘겨운 길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검찰에 묻고 싶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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