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외교에서 '정의(正義)'를 내세우며 다른 나라와의 갈등이나 마찰이 생기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80년대 이후 중국 외교의 근간이 돼 온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ㆍ힘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대신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아 '해야 할 말은 하고 써야 할 힘은 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 겸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은 16일 중국공산당 이론지인 구시(求是)와 외교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외교를 실행할 때 갈등이나 문제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그 동안 경제 성장에 유리한 외부 환경의 조성을 외교의 최고 목표로 삼아 가능한 한 외교적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피해왔다. 그러나 양 국무위원은 '새로운 정세 아래 중국 외교 이론과 실천 창조'란 제목의 이 글에서 외교 원칙의 변화를 시사하며 "관련국과의 불일치와 마찰을 적절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중국은 평화 발전의 길을 걷겠지만 정당한 이익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 핵심 이익도 절대 희생할 수 없다고 시 주석이 강조했다"고 역설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 미국이나 일본과의 외교적 대립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라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일각에서 중국이 북한과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피하는 바람에 북핵 문제가 더 커졌다고 비판하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대북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양 국무위원은 나아가 정의와 이익을 조화시킨 의리관(義利觀)을 중국 외교의 새 원칙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는 "정의와 이익의 관계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중국 전통 문화의 정수이자 중화민족이 계승해 온 도덕 준칙"이라면서 "이는 국제관계의 일을 처리할 때도 중요한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시 주석이 외교에서 정확한 의리관을 수립, 정치상으로는 정의와 공도(公道)를 지키고 도의를 우선하며 경제상으로는 상호 번영과 공동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양 국무위원은 "각국은 상대방 이익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자신을 이롭게 하거나 이웃에게 화(禍)를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제외교 무대에서 정의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할 때 많이 사용한 용어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상호 존중의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한 상태다. 양 국무위원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유관 국가들과의 업무를 적극 추진해 한반도 정세의 완화를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양 국무위원의 글은 향후 10년 시진핑 시대 중국 외교 정책의 윤곽을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중심으로 한 중국 새 지도부는 지난 5개월 간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유럽 등을 순방하며 100여명의 국가 정상과 만나 중국 외교의 방향을 고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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