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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8월 17일] 참회와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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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8월 17일] 참회와 화해

입력
2013.08.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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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7일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폴란드 바르샤바 자멘호파 거리의 유대인 위령탑으로 화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맞서 봉기했다가 5만6,000여명이 살해당한 비극을 기리는 위령탑이니, 브란트의 방문이 뻔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위령탑을 짓누르고 있는 분노 속에서 브란트 총리가 섰다. 잠시 고개를 숙인 그가 뒤로 물러서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 전 세계 언론들은 이 사진을 1면에 올리면서 "무릎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며 경의를 표했다. 그 날 서독과 폴란드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인 요제프 키란티예비츠 폴란드 총리는 브란트를 끌어안고 통곡했다고 한다. 폴란드는 이후 바르샤바에 브란트 광장을 만들었고 기념비도 세웠다. 브란트의 진정한 참회가 폴란드 국민들을 감동시켰고, 독일을 침략과 살육의 멍에로부터 구제했다.

▲ 43년 전의 브란트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일본 지도자들의 무도한 언행 때문이다.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한 나치 수법을 배우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 군대 위안부가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 군복 퍼포먼스를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이르기까지 상식 이하의 극우적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 극점은 아베 총리가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역대 총리들이 했던 '가해와 반성', '부전(不戰) 맹세'도 생략한 것이다.

▲ 일본 침략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었던 한국 중국 등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다. 잘못한 자가 진심으로 참회하고, 상대가 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가해자가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참회와 화해는커녕 대립과 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오는 듯하다. 이제 우리도 '일본의 브란트'를 기다리는 환상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헌법개정으로 침략전쟁도 할 수 있는 일본을 전제로 냉정한 전략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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