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재가동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환영하고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다. 좁게 보면 공단에 입주해 있던 120여개 우리 기업들의 시름을 덜고, 북한으로서도 근로자 5만3,000여명을 비롯한 20여만명의 주민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크게는 남과 북이 대화와 소통의 창구를 복원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물꼬를 텄다는 의미를 둘 수 있다. 중단된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진일보한 합의 내용이 기대감을 품게 한다. 툭하면 일방적인 구실을 내세워 남북관계를 파행으로 몰고 갔던 북한의 행태를 제어하기 위해 개성공단의 인적ㆍ물적 자원의 흐름을 보장한 것은 큰 성과다. 또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도모하기 위해 국제적 기준의 기업활동을 약속하고 외국기업을 적극 유치키로 한 것도 신선하다. 합의문대로 잘 진행된다면 북한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하고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끄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북한의 약속이행을 담보할 장치가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이는 출범하는 남북공동위원회에서 차차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 모든 긍정적 전망과는 별개로 북한이 왜 개성공단 재가동에 전격 합의했는지에 대해 면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표면적으로 북한은 원산 개발사업이나 나진ㆍ선봉 특구개발, 더 나아가 해외자본 유치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을 우선적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핵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을 추구할 만큼 북한 경제가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다. 그럼에도 개성공단 재가동이 오로지 경제적 필요에 따른 결정이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국은 북미관계, 6자회담 진전을 위해서는 먼저 남북관계를 개선할 것을 북측에 요구해왔다. 이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에서 과거 정권과는 다른 스탠스를 취하는 중국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결정이 북한이 염원하는 '체제안정'의 절대적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고려한 조치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합의문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변화를 받지 않도록 한다'고 돼 있지만, 북한의 결정 이면에는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싼 한반도 정치논리가 내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정세가 지극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것인 만큼 북한이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중국에 접근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상식이다. 이렇게 보면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개성공단의 운명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에 대해 미국 정부는 "환영한다"는 긍정적인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의례적인 논평과는 반대로 정치권과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기류가 더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날카롭게 대치했던 남북이 협력의지를 밝힌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외교협회(CFR) 연구원은 "북한이 경제발전과 핵개발의 병진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중요한 걸림돌"이라고 지적, 핵과 경제를 분리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반도 정세에는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워싱턴의 이런 분위기는 미국이 북핵에 대해 취해왔던 '전략적 인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 선택'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바꾼 것과 관련이 있다.
개성공단 합의는 자체로 박수를 칠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든 변수를 검토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핵문제의 종속변수가 아닐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독립변수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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