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보다 낮은 경매물건 4년 새 40배 급증, 주택 가격 대비 구매력 부족해 도움될 듯, 주택수급 비중 낮아 전세난 해소에는 역부족
현모(33)씨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6계 법정을 찾았다. 그는 2008년 결혼 후 셋방살이를 하다 현재 서울 서초구에 보증금 2억5,000만원짜리 20평(66.6㎡) 전세를 살고 있다. 그는 "대출을 조금만 더 받으면 경매로 친정 근처 소형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셋값 걱정 안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셋집난민들이 경매로 눈을 돌리고 있다. 치솟은 전셋값에 치여도 당장 집을 사자니 더 떨어질 것이란 불안을 누를 수 없는 세입자들이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이다. 어차피 구매할 집이라면 현 시세보다 싸게 사는 게 그나마 미래의 부담을 더는 방법. 부동산경기 침체로 아파트 최저 경매가격이 전세금 이하로 떨어지니, 경매가 물건도 없고, 재계약 때마다 수천 만원 오르는 전세보다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15일 경매정보업체에 따르면 수도권 경매 입찰자 수는 올해 7월 말 기준 8만7,621명으로 2010년 동월(5만8,791명)보다 3만명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간 1.6~5.5% 떨어진 반면 전셋값은 2.3~12.1% 급증했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격차가 줄다 보니 전세보다 싼 경매 물건도 속속 눈에 띈다. 올 7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경매 물건(최저가 기준) 중 전셋값 시세보다 낮은 매물은 375건으로 2009년(9건)에 비해 40배 이상 급증했다. 예컨대 경기 남양주시 도농동 상조아파트 전용면적 59㎡ 아파트는 6월 9,121만원에 낙찰돼 전세(9,500만원)보다 쌌다.
실수요자 입장에서 경매는 전세대란 탈출과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처럼 여겨진다. 덕분에 경매를 독학하거나 관련 학원에 다니는 주부나 직장인이 차츰 등장하고, 경매 컨설턴트나 공인중개사와 함께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주택 거래를 성사시켜 중개수수료를 받아야 할 공인중개사들마저 매수 희망자들에게 경매를 심심찮게 권유할 정도다.
그러나 위험요소도 숨어 있어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경매는 일반적인 주택 거래와 달리 물권분석, 권리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 더구나 유찰이 여러 번 반복되면 과열 경쟁으로 낙찰가가 높아지기도 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셋값 상승기에 경매가 저렴하게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명도 과정에서의 비용 등 표면적인 낙찰가보다 지출이 더 많아지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대란을 잠재우기에도 역부족이다. 연간 경매 낙찰자 3만명 중 실수요자는 30%대로 이들을 모두 무주택 세입자라고 가정해도 경매를 통한 내 집 마련 건수는 1만건 안팎이다. 최근 7년간 평균 주택거래량이 89만건인 걸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숫자는 아니라는 얘기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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