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하기 위한 비상상고(非常上告) 청원을 검찰이 끝내 외면했다. 억울하게 징역형을 살고도 저소득, 고령 등의 이유로 재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 수백명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더 멀어졌다.
15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긴급조치변호단(단장 이석태)에 따르면 대검 공안1과(과장 송규종)는 "비상상고의 목적 및 현행법 체계에 비춰 청원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최근 민변에 통보했다. 민변은 지난 5월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긴급조치 1, 4, 7, 9호 피해자들을 위한 비상상고 청원서를 냈다. 비상상고는 판결이 확정된 사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법령 적용 위반을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는 형사소송법상 비상구제 절차다.
검찰은 "학설과 판례 상 비상상고의 주 목적은 '법령의 해석 및 적용의 통일'이며, 구체적 사실인정의 착오를 바로잡아 유죄 선고를 받은 자의 구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재심과 다르다"며 "이미 법원이 재심을 통한 권리 구제를 인정하고 있어 비상상고의 실익도 거의 없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긴급조치 1, 4, 9호의 경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위헌 판단으로 '법령 해석의 통일'이 이미 이뤄졌고, 긴급조치가 폐기됐으므로 '법령 적용의 통일'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7호에 대해서는 "아직 위헌 결정이 나지 않아 비상상고의 요건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긴급조치에 대해서만 비상상고를 한다면 다른 위헌 규정들과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민변 관계자는 "비상상고가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대법원의 몫"이라며 "과거 긴급조치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 적극 가담했던 검찰이 형식적인 법 논리에 갇혀 피해자 권리 구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도 "긴급조치는 태생부터 위헌적으로 만들어진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다른 사례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는 1,000여명에 달하지만 법원에 재심을 청구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 350명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저소득ㆍ저학력층으로 막연한 두려움이나 사망, 고령으로 재심 청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민변의 분석이다. 민변은 검찰 답변에 대한 법리 검토를 마친 뒤 헌법소원 등 다른 구제 방안을 찾아볼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말 전해철 민주당 의원이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일괄 구제와 배상을 위해 발의한 '유신헌법하 긴급조치 위반 유죄판결의 일괄무효를 위한 법률'은 아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직전 새누리당이 발의한 '긴급조치 피해자 보상법'에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바 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