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왼쪽 사진) 총재가 야심 차게 도입한 한국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도가 시행 2년여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도입 당시에는 한은이 글로벌 중앙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한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수 차례 인사를 거치는 동안 핵심 기능을 모두 빼앗겨 지금은 누가 그 역할을 맡고 있는지조차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거센 내부 반발을 무릅쓰며 김 총재가 시도한 실험이 자기모순에 빠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15일 한은에 따르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장기 경제연구를 총괄하며 한은의 견해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자리. 공식적으로는 2011년 신설 이후 지금까지 김준일(오른쪽 사진) 부총재보가 맡고 있다.
출발은 화려했다. 김 총재는 2010년 경제연구원장 공모를 통해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김준일 부과장을 발탁,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중책을 맡겼다. '김 총재의 직속 후배(서울대 경제학과ㆍ한국개발연구원) 챙기기'라는 뒷말이 나왔지만 김 부총재보의 화려한 이력이 이를 잠재웠다. 한은은 당시 조직개편안을 통해 "경제연구원장이 겸임하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의 중장기 연구과제를 발굴ㆍ조정하고 국제 네트워크 확충, 대외 커뮤니케이션 담당 등도 맡는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 IMF, 세계은행(WB) 등 글로벌 기관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후 연쇄적 인사 이동의 와중에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위상은 흐릿해졌다. 작년 4월 김 총재는 파격 인사를 통해 김준일 당시 경제연구원장을 사상 첫 외부출신 임원(부총재보)에 앉히면서 경제연구원장을 새로 뽑았다. 올 7월에는 사상 첫 여성 임원(서영경 부총재보)을 발탁하면서 그 동안 김 부총재보가 맡고 있던 조사국 지휘 업무가 서 부총재보에게 넘어갔다. 조사연구를 총괄하는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한은의 양대 조사부서(조사국ㆍ경제연구원)를 지휘할 연결고리를 잃은 셈이다. 김 부총재보는 대신 현재 통화정책국과 국제국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꼭 조사부서를 지휘할 필요는 없다"며 "김 부총재보는 여전히 한은 내 연구위원장을 맡아 수석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 내부의 시선은 시큰둥하다. 조사국 담당 임원이 한은의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게 상식이라는 것이다. 한 직원은 "한은 전통의 인사 구도를 깨면서까지 김 총재가 밀어 부쳤던 조직개편의 결과가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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