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수백 명이 사망한 이집트 군부의 유혈 시위 진압으로 이집트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업고 초강경 무리수를 두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 축출 2년여 만에 이집트에 군부 독재정권이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왜 무리하게 진압했나
이집트 군경은 지난달 8일과 28일에도 시위를 무력 진압해 총 100여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이번에는 '학살'이라고 할만한 피해 규모를 냈다. 이집트군이 지난달 3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과도정부를 세운 이래 빚어진 최악의 유혈사태다. 군부는 이달 초 수도 카이로에서 시위대에 자진 해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미국, 유럽연합, 아랍국가가 중재한 반정부세력과의 협상이 14일 결렬되자 곧바로 공권력을 투입했다.
미국이 이집트 군에 시위 자유 보장, 민정 이양을 공개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충격적 사태다. 당장 이집트 군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한 것이 강경 진압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나빌 파흐미 이집트 외무장관과 통화했지만 시위 진압을 중단하겠다는 확답을 못 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집트에 매년 13억달러(약 1조4,540억원)의 군사원조를 제공해온 미국은 이번에도 군부의 무르시 축출을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는 등 사실상 이집트 군을 두둔했다. 지난해 무르시 정부에서 기존 군부 최고실력자 후세인 탄타위가 실권하고 압델 파타 알시시 현 국방장관이 부상하면서 군부 내 권력지형이 바뀌고 미국과의 소통에도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집트 군이 국내 여론상 우위에 있다는 판단으로 강경책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있다. 쿠데타 발발 이전인 5월 국제 여론조사기관 조그비의 조사에서 군부는 이집트 국민 94%의 지지를 얻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 강화, 심각한 경제난 등으로 무르시 정부에서 민심이 이반한 결과였다.
스티븐 쿡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군부 중심의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지면서 이집트에 의회, 선거, 토론 등 정파적 갈등을 해소할 제도ㆍ문화가 확립되지 않았다"며 "그 결과 조직되지 않은 세력들이 거리에 몰려나와 자기 주장을 하며 폭력적으로 대립하다가 결국 군이 권력을 장악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부 쿠데타 용인한 미국ㆍ유럽 진퇴양난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집트 유혈사태로 미국ㆍ유럽이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군부 쿠데타를 용인하며 내걸었던 '이집트 민주주의 재건을 돕는다'는 명분이 정당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자국민 학살을 강력 비난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해왔던 이들 국가가 이번 사태를 용인할 경우 이중잣대라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서구 국가들이 이집트 군부에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 전망이다. 미국 등과 오랜 우방을 형성해온 이집트 군부가 중동지역에서 반미 이슬람의 확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등이 이집트 군부를 제재하면 자칫 무르시의 복권을 주장하며 군부와 대립하고 있는 이슬람세력에 힘을 실어줘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집트로 영역을 확장하는 빌미를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특히 미국-이스라엘 동맹에 큰 위협이다.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부통령을 제외하고는 과도정부 내각 이탈자가 없는 점도 서구가 사태를 관망하는 이유다. 군부와 세속주의 세력의 연대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집트 군을 비난하면서도 군사원조 중단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원조 중단을 빼면 마땅한 카드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가진 제재수단이라고는 F-16 전투기 인도와 이집트군과의 합동훈련을 늦추는 것이 전부"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4일 이번 사태를 보고받고 한 일이라곤 골프를 치고 후원자와 칵테일을 마신 것뿐"이라며 대응책 부재를 꼬집었다. 여름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부대변인을 통해 "폭력 사용을 강력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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