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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4>학생 획일화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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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군대문화]<4>학생 획일화하는 학교

입력
2013.08.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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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두발검사, 체벌 등 전체 질서와 집단에 복종하는 법 가르치는 학교

2007년 당시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김도한(가명)군에게 수련회는 끔찍한 기억이다. 심신 단련을 위해 2학년 전체가 2박3일간 떠났던 수련회 첫날 교관은 학생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단체생활을 위한 제식훈련이라며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더니 줄이 흐트러졌다면서 얼차려를 줬다. 평소 몸이 약했던 김군은 엇박자를 냈고, 김군이 속한 조는 계속해서 걸렸다. 군사 훈련과 비슷한 체험활동을 한 둘째 날에는 더 큰 난관이 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겁이 많았던 김군은 공중에 매달린 외줄을 가까스로 건넜다. 하지만 김군이 시간을 오래 끈 탓에 김군의 조는 제일 마지막에 밥을 먹는 벌을 받았다. 사단이 난 것은 그날 밤이었다. “너 때문에 단체기합 받았잖아. 평소에도 계집애 같이 굴더니, 남잔지 여잔지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김군과 한 방을 쓰던 같은 조 친구들이 김군에게 달려들어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만졌다. 단체행동에서 뒤처져 집단에 피해를 준 김군에 대한 응징이었다.

당시 학생들을 인솔했던 조모 교사는 “학교에서는 이 일을 수련회 자체와는 상관없는, 으레 또래 남학생간 있을 수 있는 심한 장난으로 여겼다”면서 “하지만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병영체험 류의 수련회 자체가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단체생활의 질서를 익힌답시고 개개인의 체력적 차이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강압적으로 훈련을 밀어붙였고, 뒤처지면 연대책임을 물어서 부족한 친구를 친구 아닌 적(敵)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 교사는 “가해 학생들은 소위 일진이 아닌 평범한 학생들이었는데 그래서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수련회가 이런 집단적 폭력 욕구를 부추겼던 셈”이라며 “일제히 단체기합을 주고, 거기서 뒤처진다고 또 기합을 주는 상황이 없었다면 김군이 희생양이 되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정색 교복, 교련교육, 운동장조회 등이 사라지고 학생인권조례가 실행되는 요즘의 학교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학교에 비하면 상당히 진일보했다. 교칙을 정할 때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아이들의 개성과 의사표현을 존중하는 학교도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다양성을 눌러 획일화하고,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여기는 군대문화의 잔재는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학생들을 길들이기 위해 군대식 수련회에 보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충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어떤 교사들은 소위 문제 학생이 있으면 해병대 캠프 같은 데 보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며 “학기 초에 수련회에 보내는 것도 말하자면 튀는 애들, 기센 애들을 밟아주자는 취지”라고 털어놓았다. 합숙 환경에서 학생들은 강압과 폭력에 쉽게 익숙해진다. 서울 강북구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조모양은 “강당에 집합하라고 했는데 조용히 하지 않았다고, 점호를 하는데 이불을 펴놓지 않았다는 등 이유로 교관에게 단체기합을 받았다”며 “친구들 모두 처음에는 왜 수련회에서 기합을 받아야 하는지 그 자체가 너무 이상하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불만을 가졌었지만, 곧 원래 수련회에는 교관이 있고 기합을 받는 곳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더라”고 말했다.

일부 시ㆍ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때마다 거쳤던 거센 논란들도 어쩌면 이 같은 획일적 군대문화와 다원적 민주주의 사이의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두발∙복장 검사, 체벌 등은 개성을 철저히 묵살하고 틀에 박힌 모습을 강요하는 군대문화의 단면인 셈이다. 두발검사와 체벌이 예사였던 한 대구 고등학교의 졸업생 김모(19)군은 “머리를 반삭 수준으로 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복도에 꿇어앉히고, 종아리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리는 일이 빈번했다”며 “머리 안 민다고 이런 개,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 2학년 이모군은 “분명히 학칙상의 두발규정이 있음에도 선생님이 자기 상식과 맞지 않는다며 자의적으로 규정보다 훨씬 짧은 3㎝로 잘라오도록 했다. 우리 성적이 좋지 않아 교장이 따로 내린 지시라는 얘기가 돌았고, 어떤 선생님들은 ‘머리가 짧으면 밖에 못 돌아다녀서 공부밖에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학실적만 좋으면 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학교가 요구하는 기계적 획일성은 차이를 차별로 여기고, 나와 다른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집단 문화를 만든다. 이런 문화 속에선 소수에 대한 배타주의,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횡행하게 된다. 서울 강북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정모군은 “특수반에 ‘쉭쉭’하는 바람소리에 민감한 친구가 있는데 일부러 바람소리를 내서 그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유도하고, 따라하면서 조롱하는 친구들이 있었다”며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배웠기 때문에 하나의 低껐타??폭력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성찰할 줄 아는 시민을 키우지 못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교육의 한계를 지운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이모 교사는 “군대에서 명령불이행 자체가 가장 큰 잘못인 것처럼 학교에서도 ‘이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했어’라고 지시를 어긴 것을 지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왜 하면 안 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등에 대한 설명이나 소통, 합의 없이 지시만 잘 따르는 학생들을 키워내는 것이 과연 교육의 본질이냐”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학교 교육에서는 민주주의나 인권의 가치를 학생들이 스스로 체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히려 군사문화에 입각한 획일성, 상명하복 등을 갖게 한다는 건 상당히 문제가 있다”며 “학교 안의 의사결정 구조에 학생이 참여함으로써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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