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결혼은 소박한 절차였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나 8년이나 사귄 사이여서 약혼식은 걸렀다. 패물이라곤 민짜 금반지와 보급형 손목시계 하나씩 나눠 끼었고, 아내에게 금 목걸이 하나를 보태준 게 전부였다. 선친이 600만원을 들여 서울 변두리 단독주택 2층에 방 하나와 작은 거실, 부엌이 딸린 셋방을 얻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살림살이도 장롱 하나와 식탁, 세탁기 등으로 단출했다. 둘이 지낼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신혼부부는 행복했다.
▲ 한여름이면 물뿌리개로 방에 물을 뿌리며 선풍기를 돌려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다세대 주택 꼭대기 방을 거쳐 결혼 7년 만에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 사이 두 아들이 태어나 식구가 불었어도 아내의 알뜰한 살림 덕에 집이 커지고 세간도 늘었다. 가구나 전자제품, 그릇과 옷 등을 새로 장만할 때마다 사는 재미가 새로웠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아내의 짐 정리를 하는 내내 어느 것 하나 애틋한 기억이 묻지 않은 게 없어 수시로 상실감에 흔들렸다. ▲ 요즘 신혼부부는 집 크기나 세간이 중년 부부 뺨친다. 많은 세간을 넣으려니 큰 집이 필요한지, 큰 집을 채우려고 많은 세간을 장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의 과잉 배려와 자녀의 과잉 의존이 결합한 세태에 쫓기다 보면 결국 부모 등만 휜다. 넉넉지 못한 집은 자녀 결혼 후 파산하기 십상이고, 아예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춘 남녀도 적잖다. 그런데 큰 집과 풍족한 세간은 도리어 결혼생활의 중요한 기초를 허무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 부부는 사랑보다 정으로 산다고들 한다. 열정이 식어가는 틈을 메워 부부관계를 이어주는 게 정이라면, 그 정은 함께 한 세월과 기억에서 배어 나온다. 둘이 공들여 늘린 집과 세간은 자식처럼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원천이다. 조건으로 맺어진 부부라면 몰라도 사랑으로 맺어진 사이라면, 끊임없이 공통기억을 쌓는 ‘부부보험’을 들어둘 필요가 있다. 아들 결혼 비용이 딸의 3배나 된다는 연구보고서가 두 아들의 아버지 가슴을 짓누른다. 여러 차례 두 아들의 뒤를 당부하던 아내의 퀭하던 눈길과 함께.
황영식 논설위원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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