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인 15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靖國) 신사 주변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민족 차별적 발언이 터져 나왔다.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재특회) 회원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다. 재특회는 한국인 밀집지역인 도쿄 신오쿠보 일대에서 반한 감정을 확대하는 시위를 진행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찾아온 일반 참배객들이 이들의 소란에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우익세력은 개의치 않았다.
한국 민주당 의원단이 일본의 우경화에 항의하기 위해 야스쿠니 신사로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우익단체 회원 수백명은 신사 주위를 에워싸고 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현장의 한국 기자들을 향해 "한국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던 우익단체 회원들은 "한국 정치인은 바퀴벌레"라고 하더니 급기야 "한국인 죽여라"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민주당 의원단이 오전 8시께 신사 부근에 도착하자 우익단체 회원들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경찰에게는 "무슨 이유로 저들을 지켜주느냐"고 항의하면서 몸싸움을 시도했다. 전날 입국한 민주당 의원단은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성명을 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익 세력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은 이종걸 의원과 이용득 최고위원을 차에 태워 숙소로 돌려 보냈다. 이 과정에서 이종걸 의원은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와이셔츠가 찢어지기도 했다. 이상민 의원과 문병호 의원은 오전 9시께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서 "군국주의를 부활하려는 아베 총리의 어리석음을 강력 경고한다"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도 '대동아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라는 등 전쟁을 부인하는 피켓과 플래카드가 많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아베 정권 출범 후 우익의 목소리가 커진 탓인지 자극적인 문구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 우익단체 회원은 인근 구단시타 전철역에서 야스쿠니 신사로 이어지는 인도에서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백지화, 철회해야 한다'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로비 활동의 성과'라고 쓴 유인물을 시민에게 배포했다. 신사 내부의 통로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담화의 철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반인 참배객은 수백미터나 이어진 행렬 속에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지만 우익단체 회원들에 비해 차분한 태도를 보였다. 가족과 함께 참배 온 30대 남성은 "야스쿠니 신사가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전쟁에서 숨진 영혼을 개인 차원에서 위로하는 행위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각료와 정치인의 참배도 이어졌다.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총무장관이 이날 각료로서는 가장 먼저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 담당장관,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행정개혁 담당장관이 줄을 이었다. 신도 장관은 2011년 8월 한국의 독도 지배 실태의 허구성을 입증하겠다며 울릉도 방문 길에 올랐다가 입국이 거부됐고 후루야 위원장은 지난해 5월 미국을 방문, 뉴저지주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요구한 우익 인사다. "전시 중 위안부는 합법"이라고 망언해 물의를 일으킨 이나다 장관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게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했고 후루야 장관은 "이웃 국가의 비판이나 간섭을 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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