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의 거침없는 질주가 숱한 화제와 신드롬을 낳고 있다. 기차 꼬리 칸에 탄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반란을 그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14일 누적 관객 713만명을 기록, 1,000만 고지를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개봉 15일만의 700만 기록은 '괴물'보다는 늦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의 20일, '해운대'의 18일보다 빠른 속도다. 이 기세라면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 이어 두 편을 1,000만 관객의 전당에 올리는 첫 번째 감독이 될 수도 있다.
영화 개봉에 맞춰 국내 재출간된 프랑스 원작 만화도 지금까지 1만 5,000부가 팔리며 6쇄를 찍었다. 이 만화는 200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나,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최근엔 '설국열차'를 빗댄 갖가지 패러디 영상도 줄을 잇고 있다. 지하철 냉방 칸을 사수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폭소를 자아내는 '서울열차', 해운대로 피서를 떠난다는 '폭염열차', 중앙 냉방의 심장인 행정실을 장악하라는 '학교열차'가 등장했다. 영화 속 등장 인물 커티스를 닮은 캐릭터로 스폰지밥의 변형인 '설국지밥'이 나왔는가 하면, tvN 'SNL 코리아' 등 방송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애용되고 있다.
'설국열차 양갱'도 화제다. 꼬리 칸 사람들의 영양원인 단백질 블록이 모 제과업체의 양갱과 모양과 색이 비슷하자 네티즌들은 " '설국열차'를 볼 때는 팝콘 대신 양갱"을 권유하고 있고, 실제 판매량도 늘었다고 한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뚜렷이 갈라지는 것도 이색적이다. '설국열차'는 개봉되기 전부터 논쟁을 촉발시킨 영화다. 재미 여부보다 해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더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감독이 던진 메시지를 놓고 평론가들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논쟁을 펼쳐야 했다. 언론 시사 직후 모 영화평론가의 신자유주의 논쟁이 트윗을 달구었고, 모 기자는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재림, '봉준호의 양갱 공장' 정도"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뜨거운 계급투쟁론처럼 보였던 차가운 사회생물학"이란 말로 영화를 간단 정리했고, "횃불부터 시작해 기계의 발명, 혁명 등 인류의 역사를 그린 영화"라고 해석한 평론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설국열차'의 흥행 엔진으로 봉준호 감독이라는 브랜드, 시대 상황과 맞물린 메시지,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인 제작비 430억원의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 등을 꼽는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봉준호 감독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이 초반 흥행에 큰 영향을 줬다"며 봉 감독의 스타성을 흥행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을 흥행시킨 봉 감독은 상업영화를 찍으면서도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화는 관객보다 딱 반 걸음만 앞서 나가야 한다는 속설과도 부합한다. 이 반 걸음 효과는 "나도 봐야겠다", "다시 봐야겠다"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설국열차'는 70, 80%는 이해하겠는데 20, 30%가 애매하다. 관객들은 SNS에서 떠도는 리뷰를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답을 찾아내려 하고, 그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못 본 사람도 옆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니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며 극장을 찾게 된다.
영화는 사회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한다. 꼬리 칸의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앞칸으로 진격하지만 열차의 주인은 밖은 죽음뿐이니 살려면 애초부터 정해진 각자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억압한다. 지속된 불황의 여파 등으로 최근 충무로에선 '설국열차' 외에 '더 테러 라이브' '감기' 등 사회 체제의 문제를 직접 겨냥한 영화들이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 흥행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와 시스템을 동원해 찍은 대작이라는 점도 '설국열차'의 질주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영화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스타 배우를 캐스팅했고, 개봉 전 이미 167개국과 사전 계약을 맺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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