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확대 공약과 청와대의 "증세는 없다"는 방침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내세운 '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달콤하게 들리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보편적 복지, 무상복지 담론으로 국민의 복지 눈 높이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증세 없이는 막대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점을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잘 알고 있다. 국민이 등 돌릴 위험을 감수하고 증세를 추진하거나 정권의 신뢰를 걸고 복지 공약을 축소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 그럼에도 여권은 현재로선 "증세도, 공약 후퇴도 없다"고 선을 긋고 버티는 모양새다.
증세에 예민한 속사정은
새누리당 지도부는 8일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전에 중산층 세 부담 확대 등이 포함된 개편안을 보고 받고 펄쩍 뛰었다. 지난 주말엔 한 재선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근로소득자들도 한 달에 세금 몇 만원 더 내는 정도는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려 했다가 당 지도부의 제지를 받았다고 한다.
여권이 증세 논란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여기엔 표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존립할 수 없다는 정치집단으로서의 본질적 고민이 담겨 있다. 박근혜정부 중간 평가 성격이 짙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올 10월 국회의원 재보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유권자들의 경제와 세금 이슈 민감도는 매우 높다. 또 민주당이 세금 폭탄론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여권이 증세를 공론화할 공간이 더욱 좁아졌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복지 재원 마련 논의를 위한 국민 대타협위 설치'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타협위 설치 자체가 증세 추진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해석돼 반발을 부를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증세 공론화 타이밍 고민
새누리당은 14일 증세와 복지 공약 수정 논란이 커지자 "공약을 그대로 지키되, 경제 활성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고 공식 입장을 정리했다. 약속을 중시하는 청와대의 최근 분위기가 워낙 강경해 여당 내 증세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것이다.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대통령의 말을 뒤집는 모양새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올 연말 또는 내년부터 복지 재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 결국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권에서는 현실론에 불이 붙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이날 "이번 기회에 충분히 논의해 세금 부담과 복지 수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도 "내년 하반기까지 기다려 보고 국민 대타협을 통한 세율 인상과 복지 공약 수정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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