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7차례 마라톤 회담 끝에 14일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어렵사리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지난달 6일 첫 회담 이후 꼭 40일 만이다. 여전히 껄끄러운 현안들이 남아 있지만 남북은 이번 합의의 추동력을 바탕으로 관계 개선에 본격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원칙 중시한 대북정책의 첫 성과
이번 합의는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이 대화를 통해 이룬 첫 성과다. 특히 남북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책임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주체를 누구로 명시할 것인지를 놓고 첨예하게 맞붙었지만 결국 이해관계를 조율하는데 성공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며 끝내 관철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신념도 작용했다. 입장이 다르면 고집만 피우다 판을 깨고 틀어버리는 과거의 회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부 소식통은 "앞으로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남북이 대화 파트너로서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는 남북 모두 개성공단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의 특수성이 작용했다. 남측은 대북정책의 지렛대로서 공단을 중시했고, 북측은 이를 통해 연간 9,000만달러의 수입과 근로자 5만3,500명의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회담이 7차례나 지속된 것은 회담 결렬을 통해 남북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의욕은 있지만 방향은 달라
개성공단 정상화는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시금석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 모두 대화 재개에 의욕을 보였지만 4월 초 불거진 개성공단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통해 개성공단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남북은 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북이 각각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다른 점은 부담요인이다. 남측은 북한의 비핵화, 북측은 미국과의 담판을 통한 외부 지원이 절실하다. 서로가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지만 동상이몽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북관계가 경색을 벗어나 협력 국면으로 전환되더라도 단기간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힘든 이유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는 미국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징검다리일 뿐"이라며 "중국과 미국을 의식해 관계 개선에 나서겠지만 체면치레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또 중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북측이 이번 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만큼 당사자인 남북의 자생적인 협상 동력이 떨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최근 북한을 방문한 리위안차오(李源朝) 중국 국가부주석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나 "올해 안에 개혁ㆍ개방정책에 성의를 보여달라. 이를 위해 개성공단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인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두 목표간에 얼마나 균형을 맞출지도 관건이다. 개성공단 문제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북한은 영변 핵시설 재가동 준비를 본격화하는 등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강화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비핵화 문제를 꺼내지 않더라도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될 수 있지만 비핵화 문제를 확실히 하기 전에는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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