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어제 예정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에 따른 진술의 어려움을, 김 전 청장은 공판준비기일 참석을 각각 불참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미 원 전 원장의 증언과 진술을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전 청장은 어제 청문회에 참석하는 대신 법정에 출석했으나 대개 공판준비기일에는 변호인만 출석하는 점으로 미뤄 청문회 불출석을 위한 핑계로 보인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우리가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중대 사건이다. 대학가와 종교계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전국 곳곳으로 촛불집회가 확산되는 것은 국민들이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이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은 여야가 청문회에 부르기로 한 29명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증인이다. 그런 두 사람이 청문회 출석을 기피하는 것은 공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식조차 결여한 무책임한 처사다. 마땅히 국회에 출석해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는 게 도리다.
더 큰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다. 새누리당은 두 사람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16일 증언대에 세우자는 민주당 주장에 거듭 반대하다 마지못해 표결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당초 두 증인이 21일 청문회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며 표결에 계속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청문회 종료(23일)를 불과 이틀 앞두고 청문회에 출석하도록 하는 것은 진실 규명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진배없다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조사를 통과의례쯤으로 여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정조사 문제가 불거지자 국정원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제기하는 등 물타기를 해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때문에 여당의 국정조사 합의에 반감을 가진 두 사람이 청문회에서 폭탄발언을 하는 등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국정조사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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