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에 유기농 바람이 분 지 오래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유기농은 자급자족에 그쳤으면 좋겠다. 자기 건강을 위해, 화학비료 같은 거 쓰지 않고 키운 채소를 자기가 거두어 먹는 선에서 그쳤으면 한다는 거다. 유기농 채소나 과일이 상품이 되어 유통되고 소비되면서 고약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기농 농산물엔 고가의 판매가가 매겨진다. 소득이 많은 이들이 주 소비계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기농만을 고집해서 사먹는 계층이 발생하는 것과 동시에 유기농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소비하지 못하는 계층도 어김없이 탄생한다. 유기농 상품이 (드러나 있지 않던) 섭생이라는 치사한 영역에서 계급을 발생시킨 거다. 인삼과 녹용을 먹인 한우, 방생해서 키운 닭과 돼지도 마찬가지다. 아예 모르면 모를까, 유기농이 좋은 걸 알면서 못 사먹는 이들의 자괴감과 아이에게 농약과 화학비료를 먹고 자란 사과 한 알을 박박 씻겨서 먹이는 부모의 서러움은 누가 책임져줄 건가. 나는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가난한 집의 아이는 설탕과 짠 음식을 좋아한다.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설탕과 짠 음식을 좋아하는 식성을 물려준다. 가난을 대물림할 자신의 아이를 위로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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