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양유나(35)씨는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우연찮게 이탈리아 밀라노로 어학 연수를 갔다가 하이엔드 패션의 정수를 접하고 뒤늦게 패션 세계에 빠졌다. 화가의 꿈을 접고 이탈리아의 패션학교 마랑고니를 거쳐 영국의 패션 명문 런던 센트럴 세인트마틴에서 여성복을 전공한 양씨는 실험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앤 소피백, 클레멘트 리베이로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10년 뉴욕에서 자신의 브랜드 '유나 양'을 선보였다. 그리고 3년 만에 그의 옷은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 가수 케리 언더우드, 디자이너 겸 방송인 휘트니 포트 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뉴욕 패션업계의 권위지 WWD 등 미국 현지 패션 매체에도 데뷔 직후부터 수 차례 소개됐다. 토종 한국인 디자이너가 세계 패션의 중심인 뉴욕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그가 최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 15일까지 운영되는 팝업 스토어(한시적 매장)를 열고 유나 양 컬렉션을 고국 고객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이후에는 이 백화점의 편집매장에서 판매된다.
팝업 스토어 개장에 맞춰 일시 귀국한 그는 "운도 좋았지만 무슨 일이든 치밀하게 계획하는 성격이 브랜드 성장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판매를 못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패션은 내 옷을 누군가가 구입해 입어줄 때 완성되는 거니까. 늘 시장을 이해하기 위해 디자인뿐 아니라 경영과 마케팅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에게 명성을 안긴 유나 양 컬렉션의 대표적인 디자인은 전통적인 쿠튀르(고급 맞춤복) 기법과 고급 레이스 소재를 접합시킨 게 특징이다. 이 역시 그의 전략적 사고가 바탕이 됐다. "디자인만으로 평가한다면 저보다 더 뛰어난 천재적인 디자이너도 얼마든지 많겠죠. 저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는 소재예요. 과감하고 남성적인 디자인에 여성미를 강조하는 레이스 소재를 쓴 아이러니가 흥미롭다는 평가를 듣고 있어요."
유나 양의 의상은 미국뿐 아니라 대만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세계 각지로 뻗어가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지만 부모님은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 매장을 연 최근에야 격려의 말을 들었다고.
"사실 저도 이탈리아로 어학 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패션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잘못된 생각이지만 순수예술인 미술 전공자이다 보니 상업 디자인인 패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
고국 활동을 시작한 김에 조만간 30대 중반의 신부가 주소비층인 실용적인 디자인의 웨딩 컬렉션도 선보일 예정이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 북미와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헤드쿼터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워 뒀다.
55세 이후로는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다. "디자인도 재미있지만 내 재주 하나로 생산 공장을 비롯해 여러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낄 때가 많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즐길 수 있도록 후학을 양성하고 싶어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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