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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15일] 날씨와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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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8월 15일] 날씨와 징표

입력
2013.08.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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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었는데도 비는 수시로 퍼부었다. 비가 와서 나가 놀지 못하는 고양이들이 마루문 앞에 배를 깔고 나란히 엎드려 마당에 비오는 모양을 쳐다본다. 나도 고양이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표독스럽게 퍼부어대는 비를 쳐다본다. 그러다 그 자리의 유일한 호모 사피엔스로서 중얼거린다. "그래, 이건 뭔가 무섭게 잘못되고 있다는 징표야."

내 몸에 각인되어 있는 계절의 감각과 전혀 다른 계절들을 벌써 여러 해 겪으며 나는 몹시 불안하다. 더위도 독하고 추위도 독하다. 무엇이든 독하고 극단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구야 어련히 알아서 제 갈 길을 찾아가겠지만, 그 안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어떻게 될까? 자연은 인간을 특별히 배려하지 않는다. 자연은 그저 나아갈 뿐이고, 인간은 자신의 욕망대로 현실을 주조할 수 없다. 아마 우리를 기다리는 세계는 괴롭고 힘들 것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뼈와 가죽만 남은 채 아사한 북극곰이 생각난다. 여름 북극 빙하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앞으로 10년이나 20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은 지난해 북극 빙하의 면적이 30년 전보다 55%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미국 면적의 40%가 넘는 얼음대륙이 녹아 없어진 것이다. 그 탓에 지난해 미국 알래스카 영구동토의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주의 도시들도 섭씨 30도가 훨씬 넘는 극도의 이상고온을 보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북극빙하의 소멸과 함께 지구의 기후형태도 무섭게 변하고, 세계 각지에 자연재해가 속출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은행도 지난 6월 발표한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향후 20∼30년 안에 지구 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섭씨 2도 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이로 인해 식량부족 사태와 무더위, 열대성 태풍 같은 기상이변이 빈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 인근과 동남아시아 등 경제발전이 더딘 지역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할 것이라고 했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 화석연료에 의존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인데, 그로 인한 피해는 산업화나 경제발전과 무관한 지역에 집중된다니,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실은 이대로 가면 결국에는 어느 곳도 피해를 비껴갈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전 지구적 고통으로부터 추잡한 돈을 벌고 있다. 북극 빙하의 소멸은 석유와 가스, 광물, 물고기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극지대의 물을 헤집어대는 거대 기업들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그들에게 지구의 죽음은 또 다른 투자기회일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강을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福島) 사태로 인한 일촉즉발의 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인데도 핵발전을 추진하려는 저 파괴적인 욕망은 배후에서 검은 이익을 챙기는 집단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기업들이 생태계와 우리가 맺는 관계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가능성이 점점 더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5,000여 년에 걸친 인류문명의 최종국면은 집단광증으로 끝날 것 같다. 허먼 멜빌의 소설 에 나오는 에이허브 선장은 일찍이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흰 고래를 찾아 온 세계를 헤맨다. 자신의 광기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다. 목적만이 광적인 것이다." 에이허브 선장의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본질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생명의 불꽃이 깜박거릴 때까지, 생명으로부터 마지막 한 줌의 이윤을 짜낼 때까지 저들은 죽음의 윤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최후의 포식자가 될 것이지만, 더 이상 잡아먹을 것이 없어지면, 그들 역시 사라진다. 자연과 인간의 생명이 경제적 가치를 뛰어넘는 고유한 내재적 가치를 지녔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집단자살로 간다. 그런 사회는 죽을 때까지 제 자신을 잡아먹는다. 희망은 우리가 여기에 저항할 때만 존재한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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