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2005년 이후 최소 12건의 공공법안에 비밀리에 동의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한 혐의로 의회의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하원은 다음 달 세 차례에 걸쳐 찰스 왕세자의 법안 제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법률 제정에 대한 여왕의 거부권 행사는 헌법에 따라 보장되지만 왕세자의 거부권 행사는 근거가 없다.
가디언은 "2005년 이후 6개 부처 장관들이 도박, 건설, 에너지, 주택, 런던 올림픽 등 12건 이상의 광범위한 법안과 관련해 찰스 왕세자에게 허락을 요구했다"고 지난해 보도한 적이 있다. 왕세자는 현 내각이 들어선 2010년 이후에만 장관들과 서른여섯 차례 회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왕실은 왕세자의 법안 동의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한 내막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장관이 왕세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왕세자의 개인 이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법안"이라는 이유로 동의를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8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지난달 "왕세자가 7개 부처 장관들에게 보낸 최소 27건의 편지를 공개하라"는 항소법원의 판결을 받아냈다.
찰스 왕세자는 7억파운드(약 1조2,077억원)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고, 이 자산을 통해 지난해에만 1,800만파운드(약 31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왕세자가 개인 이익을 위해 법안을 동의 혹은 거부한 것으로 드러나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그렇듯 왕세자가 법안에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여왕도, 왕세자도 장관이 동의 여부를 물어오면 거부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원은 찰스 왕세자 등 왕실 인사를 직접 청문회에 부르지는 않을 예정이다. 그러나 반(反)군주제 단체인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사무총장은 "왕세자가 비밀리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문회에 나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영국에서는 왕실의 의회 권한 침해에 대한 논쟁이 지속돼 왔다. 여왕과 왕세자는 지금까지 최소 39건의 법안에 동의ㆍ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결정이 비상식적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대(對) 이라크 군사작전 허가 권한을 여왕에게서 의회로 넘기는 법률을 거부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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