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분인데, 우리는 그의 목에 맷돌을 매달아 30년 동안 지옥으로 떨어지게 했으니…."
13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설성경(69) 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설 교수는 광복절에 맞춰 '윤동주의 간(肝)에 형상된 '푸로메드어쓰'연구'를 발행하기 위해 꼬박 5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했다.
설 교수가 지금까지의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는 핵심은 원전의 왜곡이다.
현대어로 옮겨진'간'의 여섯 번째 연은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이다. 그리고 학자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순수성을 상실한 윤동주 자신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이 학설로 굳어진 게 30년.
하지만 설 교수는 이 현대역에서 모든 연구의 오류가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원전을 살펴보면 위 내용은 '푸로메디어쓰 불쌍한 푸로메디어쓰 /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 끝없이 침전하는 푸로메드어쓰'라고 돼 있다. 설 교수는 "원전의 푸로메드어쓰는 윤동주가 발음상 일본인 느낌을 풍기면서, 영웅인 프로메테우스를 흉내 내는 가짜 의인, 즉 일제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규정했다. 설 교수는 또 '푸로메디어쓰'와 '푸로메드어쓰'를 일부러 혼용해 일제를 다른 영역으로 구분코자 했던 시인의 의도도 현대역의 오류 때문에 완전히 가려졌다고 주장했다.
설 교수는 따라서"조선 침략을 감언이설로 미화한 일제는 가짜 의인인 푸로메드어쓰로 형상화 되었으며, 인간에게 불을 가져온 영웅 프로메테우스에 이를 빗대 풍자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간'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당위성을 말한 첫 시"라면서 "참회하는 시인이라고만 알려졌던 윤동주가 실은 다른 저항시인보다도 더 강하게 일본을 질타한 최고의 저항시인임을 알리는 시"라고 덧붙였다.
고전 연구에 정통한 설 교수는 "우리 고전인 토끼전과 그리스 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 등 윤동주가 고전을 시에 녹여 낸 것은 '간'이 유일"하다며 '간'을 새롭게 해석한 근거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토끼전은 물론 춘향전과 홍길동전 등 우리 고전을 살펴보면 가짜와 실제에 대한 내용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 기법을 시에 차용했다는 것. 설 교수는 지난 10년간 춘향전, 홍길동전, 구운몽 등을 연구하며 작품 속 인물과 작가, 주제에 대한 연구하며 '인문학 수사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윤동주의 24학번 후배인 설 교수는 "우리가 윤동주를 죽였다"며 "우리가 저지른 학문적 살인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광복절에 맞춰 출간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선배 구출작전'이라 명명하는 설 교수는 '간'의 시어를 주제로 한 다음 논문도 준비 중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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