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을 찾지 못한 이른바 '사초(史草) 실종' 논란으로 민주당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도한 문재인 의원이 소모적 정쟁만 일으켰다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에 대한 책임 공방으로 친노(親盧) 대 비노(非盧)'로 당이 양분됐다. 이후 민주당은 전열을 추스르고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며 장외 투쟁에 나섰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초 실종논란은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과연 검찰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쟁을 진화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진실을 밝히기보다 논란을 부추길 개연성을 도리어 우려하고 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중요한 사초가 증발한 전대미문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는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당이 요구한 특별검사제 대신 검찰 수사로 가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또 대선에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등을 검찰이 전원 무혐의 처리한 전례를 들어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최근 검찰에서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올해 초 검찰 수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지원(참여정부 업무관리 시스템)에서 대화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민주당은 '기획 수사'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만약 검찰 수사에서 대화록이 발견된다면 사초 실종 논란은 해프닝으로 일단락된다. 이 경우 '이지원→비서실 기록관리시스템(RMS) →이동식 하드디스크→팜스(PAMS)'로 이어지는 국가기록원 이관 과정에서의 오류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이명박 정부 폐기설'로 밝혀질 경우에는 참여정부 인사들과 민주당은 의혹을 벗고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이뤄졌는지를 두고 새누리당에 역공을 펼 수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 대화록을 삭제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엔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과 친노진영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삭제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은 차기 유력 주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정계 은퇴'요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검찰 수사가 '문재인 죽이기'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친노진영에서도 "대화록은 2권(국가기록원과 국정원)이다"는 당초 주장에서 "국정원에 1부가 남아 있으니 사초가 실종된 것은 아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은 "사초 실종 논란은 대화록이 2권인지 1권인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에 있는 대화록을 삭제하면서 국정원에 사본을 남겨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많다. 때문에 사초 실종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의도를 둘러싼 해석 공방이나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성 논란 등 또 다른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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