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완전히 틀렸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등 법정 스릴러 소설로 유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이 미국 대테러 전쟁의 어두운 이면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의 부조리와 인권 침해를 정면 비판했다. 그리샴은 12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 정부는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그리샴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대해 발언한 계기는 자신의 책 등이 지난달 '허용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반입 거부된 사건이다. 그리샴은 책을 요청한 수감자가 누구인지 추적했다가 11년째 억울하게 갇혀 있는 나빌 하드자랍의 사연을 접하게 됐다.
하드자랍은 올해 34세로 알제리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렸을 때 축구에 재능이 있었고 프로축구팀 파리생제르맹FC 선수로 뛰는 것을 꿈꿨다. 전과 기록도 없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알제리인 게스트하우스에 묵은 것이 화근이었다. 한달 후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하자 하드자랍은 파키스탄으로 떠났지만 도중에 폭격을 당했고 병원에 실려갔다가 포상금 5,000달러에 팔려 미군에게 넘겨졌다. 당시 미군은 테러 용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아랍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고 돈을 벌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밀고하는 부패한 정보원들에 의존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때 시작됐다. 하드자랍은 카불의 지하 교도소, 바그람 미공군기지 수용소와 칸다하르 교도소 등을 거치며 심문과 고문에 시달렸고 2002년 2월 테러 용의자만 수감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감됐다. "이후 10여년 간 하드자랍은 대부분 독방에서 지내며 수면 박탈, 햇볕 노출 부족, 극한 기온에의 노출, 의학적 치료 제한 등 '관타나모 편람'에 나오는 모든 잔학 행위를 겪었다"고 그리샴은 지적했다.
미군이 내놓은 하드자랍의 수감 근거는 그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운영자가 알카에다와 연루됐다는 것이다. 하드자랍이 줄곧 테러 조직과의 연관성을 부인한데다 더 이상의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군 검사로부터 몇 번이나 자신이 "오판된 경우"라는 말을 들었다. 미 정부의 검토 위원회는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하드자랍을 석방 혹은 이송 대상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용소에 갇혀 있다.
하드자랍은 절망에 빠져 2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첫 집단 단식 투쟁에 동참했다. 앞서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와 수감자의 고국 이송을 약속했지만 지지부진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코너에 몰렸다. 미 정부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굶어 죽는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살려내려 코에 튜브를 삽입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강제 급식을 실시했고 하드자랍의 생명도 자의와 상관 없이 연장됐다.
그리샴은 하드자랍의 사연을 전하며 "수백 명의 아랍인이 이처럼 관타나모 수용소 시스템에 의해 짓밟혔지만 미 정부의 공식 사과, 유감 표명, 배상은 전혀 없었다"고 분개했다. 그리샴은 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며 "하드자랍이 사회에 복귀해 자립할 수 있도록 몇천 달러라도 주고, 자신이 살았던 프랑스에 재입국할 수 있도록 프랑스에 압력을 넣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간단하게 보이겠지만,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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