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휴식시간제폭염 때 공사장 휴식 권고… 강제성 없어 있으나마나꼴불견 무더위 쉼터민원실 한편에 의자 1개… 에어컨 경로당은 빽빽유명무실 재난 도우미4명이 500가구 맡아 노숙인 등 건강 확인엔 한계
서울 최고기온이 이틀 연속 33도까지 치솟는 등 전국이 찜통더위에 시달린 13일 오후. 무더위를 피하는 쉼터가 마련돼 있다는 서울 용산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나무로 된 표지판은 잎이 무성하게 자란 화분에 가려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1층 민원실 직원에게 '무더위 쉼터'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한 켠의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 자체가 쉼터였다. 마침 의자에 앉아있던 김모(75) 할머니는 "일 보러 왔다 잠깐 앉았는데 이 의자가 쉼터인 줄 몰랐다"며 "여기 있느니 덥더라도 집에 있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낮 시간 근로자나 사회취약계층 등을 위해 세운 폭염 대책들이 겉돌고 있다. 무더위 쉼터와 무더위 휴식시간제(Heat Break), 재난 도우미 등 명칭은 그럴싸하지만, 계획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제대로 운영되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무더위 휴식시간제는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전국 공사현장에 적용되는 폭염대책이다. 6~9월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공사현장에서는 '수시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35도 이상이 2일 이상인 폭염경보 때는 '관리자가 공사중단을 검토'해야 하지만 일단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 처벌 규정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쳐 따르지 않아도 그만이다.
더구나 근로자 일당을 지급해야 하는데다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준수하기가 쉽지 않은 대책이다. 지킨다고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고, 행정기관이 공사장마다 일일이 찾아 다니며 감독하기도 어렵다. 서울시 관계자도 "시가 발주한 공사장에는 강력히 주문하지만 안 지켜도 사실상 제재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전역에 폭염주의보를 내렸지만 공사현장 곳곳에서는 끊임 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한 공사현장 관계자는 "오후 2~5시 사이 일률적으로 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한다"고 항변했다.
서울시내 3,391곳을 포함해 전국에 3만9,000여 곳이나 지정된 무더위 쉼터도 극소수 주민들만 이용하며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2층짜리 경로당은 인근 주민 20여명이 자주 찾지만, 한 개 층 공간이 약 10㎡(3평)에 불과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을 자리 찾기가 힘들 정도다. 이모(80) 할머니는 "덥지는 않아도 사람 수에 비해 공간이 너무 좁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경로당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주민센터 내 쉼터와 달리 오후 10시까지 운영되지만 보통 7시 이전 모두 집으로 돌아가 이후에는 텅텅 빈다.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 등의 폭염피해 예방을 위해 직접 방문이나 안부 전화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재난 도우미도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따라 붙는다. 서울의 한 쪽방상담센터는 소장 포함 직원 4명이 500여 가구를 맡고 있어 폭염 관리만 전담하는 인원을 두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다른 일을 하며 시간 날 때 순찰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대책이 이렇다 보니 최전선에서 뛰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푸념이 터져 나온다. 무더위 쉼터의 경우 일률적으로 경로당 위주로 지정한 것부터 문제라는 것이다. 서울 한 자치구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대부분의 경로당이 동네 사랑방 수준으로 규모가 작고 모두 매일 오는 노인들이라 새로운 이용자들이 끼어들지 않는다"며 "누구나 거리낌없이 이용한다는 쉼터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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