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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가족에게 왕진 간 의사의 악몽… 윤영선의 유작, 낯선 충격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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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가족에게 왕진 간 의사의 악몽… 윤영선의 유작, 낯선 충격으로 부활

입력
2013.08.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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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에 소녀는 전율한다.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소녀'의 1악장은 불안과 희망이 뒤엉켜 있지만 2악장에서는 운명에 체념한 듯 비장한 테마로 변한다. 죽음의 예감이 객석을 짓누르는 극단 백수광부의 '죽음의 집 2'는 2악장을 수시로 불러낸다. 극작가 윤영선의 비원(悲願)일까.

2007년 5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극작가 윤영선의 미완성 유작이다. '여행', '키스', 파티' 등 삶을 강하게 긍정하는 작품들을 줄기차게 발표하던 그의 때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연극인들은 초고 상태로 남은 이 작품을 지난해 '제2회 윤영선 페스티벌'에서 낭독 공연으로 처음 선보였다. 이후 정식 공연 요청이 끊이지 않자 후배 극작가 최치언이 초고를 재창작하고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연출가 이성열이 나서 무대에 올렸다.

늦은 밤 집으로 찾아온 젊은 여인에 이끌려 화전민의 집에 당도한 시골 보건소 의사는 "제발 좀 살려달라"며 소매를 부여잡고 흐느끼는 노파와 맞닥뜨린다. "내가 젊기만 했어도 내 자식 살리는 길이라면 내 살이 아니라 내 뼈라도 모조리 먹이겠어."

하지만 가족은 환자는 보여주지 않고 알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여자를 따라서 의사는 빗속을 뛰어왔네. 그러나 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네."극중 코러스 역할을 하는 딸들이 읊는 음울한 노래는 잊을 만하면 틈입하는 망령의 유혹 같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맥베스를 죽음의 유희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녀들의 저주처럼.

평생 숲에서만 지내온 사람들은 지지리도 궁상맞다. 그들의 언어는 도시의 감성이 감당하기 힘든, 낯선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두 세계의 만남은 이질적 문명의 충돌이다. 그들의 세계에 호기심을 보이던 의사에게 이웃 주민이 술잔을 내리치며 퍼붓는다. "저희 무지렁이들이 숨기는 건 창피함과 부끄러움 밖에 없어요. 선생님 같으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걸 저희들한테 막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못 배운 화전민들의 억하심정이 분출하고 만 것이다. "왜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만 참아야 합니까!"무대는 은연 중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문제를 환기시킨다. 소통, 타인에 대한 존중 등 사회적 코드가 감지된다.

극작ㆍ평론가 장성희씨는 "고인이 못다한 아쉬움을 환상적 리얼리즘의 무대로 실현했다 "고 평가했다. 22일까지 선돌극장.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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