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도 지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장마는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이곳 제주도에는 소나기가 서너 차례, 그것도 한두 시간 잠깐 지나갔을 뿐입니다(이 마른장마 탓에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육지에서는 게릴라성 폭우니 집중 호우니 하여 물난리를 겪고 있는데, 제주에서는 폭염 특보 안 내린 날이 없고 열대야 아닌 밤이 없었지요(이 한반도가 그리도 넓은가 하는 감탄마저 나올 법합니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장마가 지나고 나자 이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강원도에서는 개학 날짜를 연기했다는 소식도 들리는군요.
이런 기상 이변은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최악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홍수와 폭설, 가뭄과 한파로 지구촌이 된통 몸살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여름철의 혹서와 겨울철의 혹한으로 양극화된 이런 재해는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지구가 뿔났다!'라고 표현한 글을 보았습니다. 영어에 'exploit'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넓게는 '자원을 이용한다'는 뜻인데, 그 속에는 '개발'과 '착취'의 상반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자원의 이용은 물론 모순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명 자체가 먹고 살기 위해 경작하는 것이고, 땅을 파헤치지 않고는 밭을 일굴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유효 적절한 이용을 통해 개발과 착취의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 그러나 인간의 '자연 이용'은 그동안 착취 쪽으로 쏠린 채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문명의 진보를 앞세운 산업화요 근대화였습니다. 그 과정에 자연은 '정복'당했고, 인간은 의기양양하게 지구의 주인임을 선언했지요.
그 결과 더욱 심해진 환경 파괴와 생태계 불균형에 신음하던 지구가 이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착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저항 또는 반란의 아우성이며, 지구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구는 살아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 있습니다.
제임스 러브록의 를 새삼 꺼내 읽습니다.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카오스(혼돈)에서 스스로 생겨나 우라노스(하늘)를 낳고, 그 아들을 남편으로 삼아 땅과 바다와 신과 인간을 낳았습니다. 가이아는 그러므로 모든 것의 원초이며, '어머니 대지' 자체인 것입니다.
이 '어머니 대지'를 '스스로 진화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것이 '가이아 이론'의 요체인데, 인공위성이 대기권 밖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면, 태양계에서 하나뿐인 '물의 행성'―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부른―이 그야말로 살아 숨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가이아 이론'은 우리에게 행성적 시야를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그처럼 높고 열린 눈으로 보면, 지구는 그 안에 온갖 생물과 무생물을 보듬어 안은 '어머니'로 다가올 것입니다. 가이아가 건강하지 않고는 인간이 건강해질 수 없고, 병든 지구를 치유하지 않고는 병든 인류 사회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이런 논의는 물론 서구에서 제기되었지만, 그 발상의 뿌리는 동양적 사고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연은 본디 인간과 합일되는 대상이지 공격이나 이용의 표적이 아니었지요.
올 여름에도 우리나라 곳곳의 산과 들, 계곡과 해변은 몰려드는 행락객과 피서객들로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수려한 자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놓고 그곳을 행락지로 만드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군요. 우리가 그동안 자연 앞에 얼마나 오만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반성하는 것도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인사로서 괜찮지 않을까요?
김석희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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