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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 길을 모색하다] <하> 전문가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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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다시 길을 모색하다] <하> 전문가 좌담회

입력
2013.08.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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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지상파 방송 신뢰도 추락… 소통 상실 의미하는 심각한 문제… 일 언론 모방 행태도 우려"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세습 언론 사주들 전횡 심각… 한국일보 사태 통해 경영·편집 분리 중요성 부각"이승선 충남대 교수"소유 분산돼야 언론 기능 회복… 편집규약 법제화 보다 경영진·기자 자발적 준수 중요"

안개 속을 걷는 듯하다. 좌표조차 확인할 수 없다. 난마처럼 여러 문제들이 얽힌 언론계의 현재는 복마전과 다름없다. 신문산업은 기울고 방송은 공정성 시비에 멍들었다. 지리멸렬하는 언론에 자본과 권력의 족쇄가 은밀하게 다시 채워지려는 지금,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과 원용진 서강대 커뮤케이션학부 교수,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와 함께 편집권 독립을 중심으로 한국 언론의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의 길을 탐색하려 한다. 한국일보 사태의 여진 때문일까. 세 사람은 한국일보의 과거와 현재에 빗대 한국 언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사회

한국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경제권력 등 다른 사회적인 변수들 때문에 편집권 독립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종철 위원장(이하 김)

45년간 언론계를 지켜봤지만, 한국일보 같은 유형의 언론사 사태는 처음이다. 편집권 인사권을 둘러싸고 현직 기자들과 경영진 사이에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한국일보의 이번 사태는 특이하다. 대체로 권력의 압력을 받은 언론사 사주가 언론인을 탄압하고 해직했었는데 이번 한국일보 사태는 회장이 구속됐다.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대단히 의미가 크다고 본다. 경영권은 대주주가 갖는다고 해도 한국일보 사태를 계기로 인사권과 편집권을 누가 갖느냐는 중요한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원용진 교수(이하 원)

학계에서는 언론이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고 상당히 오랜 기간 지적해 왔다. 소유와 경영, 편집과 제작이라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분리되는 게 옳지만 실질적으로 경영권과 편집권은 뒤섞여 있었다. 공영방송은 주인이 따로 없어 시민사회가 개입하기 용이한 부분이 있다. 반면 신문은 공공재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소유권을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개입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일보 사태 등을 통해 소유ㆍ경영과 제작ㆍ편집의 분리가 얼마나 중요한사안인지 논의할 수 있게 됐다.

-이승선 교수(이하 이)

1980년대까지는 정치권력에 의해, 1980년대 후반부터는 광고주 기업에 의해 신문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일보 사태는 내부 경영 소유진의 신문 통제가 어떤 병폐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일보 사태의 특징은 내부 구성원 스스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외부 17개 언론사의 젊은 기자들이 이념과 소속을 떠나 한국일보 사태 해결에 동참을 호소한 것은 한국 언론사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극을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우리나라 주요 신문들이 거의 다 소유권을 세습하고 있다. 동아일보 4대, 조선일보 3대, 중앙일보 2대로 세습됐다. 한국일보도 2대째다. 사유재산이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사주들이 절대 다수의 주식을 갖고 인사, 편집, 경영권을 다 지배하니 자유언론, 독립언론이 될 수 없다. 권력과 결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또 대자본을 비판하면서 어떻게 광고를 받겠나.

-원

나는 한국일보 사태를 겪으면서 편집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상당히 불만을 표현해왔다. 이 사안을 편집권 논리로 끌고 가는 것은 정당치 못한 소유주가 행한 소유권 행사를 과도하게 미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편집권이라는 용어를 쓸 경우엔 새로운 의미를 담아 다시 해석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방송은 방송법에 편성권이 적시돼 있고, 편성권을 행사하려면 편성규약을 경영진과 제작진이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법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신문의 편집권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사회적으로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한국일보 사태는 언론사상 전무후무한 편집국 폐쇄 조치를 겪었다. 이 문제는 편집권 갈등이라는 틀을 훨씬 넘어서서 사주의 배임, 횡령 등 실정법 위반과 그로 인한 경영 부실 문제의 해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편집권 용어의 사용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편집권이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 군정과 교감에 의해 일본신문협회가 1948년 3월 성명을 내면서 처음 사용됐다. 당시 편집권은 신문의 경영ㆍ소유권에 대한 도전을 불허한다는 선언 차원이었다. 한국에선 편집권이 언론사의 소유자본이 건전해야 하고 언론 종사자들이 취재, 편집, 논설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차원에서 1960년대부터 주장돼 왔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이 용어는 편집국장 직선제, 편집국장 임면 동의제로 구체화하고 있다. 2008년 시瑛邂?사태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언론사 내의 편집권은 편집규약이나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되고, 편집권의 상당 부분은 언론 종사자들에 의해 행사된다.

-김

두 분 말대로 우리나라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편집권 중심으로만 볼 수는 없다. 소유권과 인사권, 편집권을 아울러 봐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편집권은 기자들이 싸워서만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KBS 사장을 임명하고 MBC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임명한다. 방문진 이사진이 여당 몫 6명, 야당 몫 3명으로 구성되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권력이 사장을 임명하는 것이다. 지난해 MBC는 사상 최장의 파업을 했는데 편성권을 기자들이 갖게 됐나?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의 모든 문제는 소유권, 경영권 때문에 발생한다. 한국일보 사태는 우리나라 언론사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과연 공정한 편집을 하도록 언론사를 경영하고 있느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원

미디어 지표가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신문 구독률은 1996년 69%에서 2011년 25%로 급락했다. 가장 가슴 아픈 게 매체 신뢰도인데 신문이 가장 떨어진다. 신문업계는 독과점 시장, 사양산업이 되면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이 상승하고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다. 신문의 신뢰도,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하락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 혼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사회

언론사 지배 구조는 독립적인 보도와 당연히 연관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이상적인 지배 구조는 어떤 형태이고 이를 정책적으로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이

한국일보뿐만 아니라 한국 신문과 방송이 어떤 상품을 만들어 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소유 구조의 분산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국내 언론 경영 문화에 비춰보면 과도하게 1인 혹은 소수에 집중된 소유 구조, 정치 권력에 의한 지배구조가 경영상의 폐해를 불렀다. 또 이런 경영상의 폐해가 인사권 갈등, 편집부문에 있어서 제약과 제한, 갈등을 잉태했다. 언론사의 소유 구조는 분산될수록 효과적이다.

-김

소유 구조의 확립이 제일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한국일보뿐 아니라 언론계 전체가 소유 구조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뉴스타파 이야기를 하고 싶다. KBS, MBC 등에서 고액 연봉을 받던 사람들이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박차고 나와서 젊은이들과 결합해 뉴스를 잘 만들고 있다. 3만 명이 한 달에 최소 1만원씩 후원금을 낸다는데, 매달 3억원이 넘는 돈이다. 광고 받을 필요 없으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 지금 당장 한국일보가 뉴스타파 형태로 갈 수는 없겠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신뢰할 수 없는 대기업이 소유해 직장만 안정된다면 결국 이번에 왜 싸웠는지 의미가 희석되고 말 것이다.

-원

한국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내세울 때는 중도지라고 말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 자체가 큰 짐이 될 것이다. 중도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 중도는 중간쯤 간다는 뜻이 아니라 양극을 끌어올린다는 의미가 있다. 내용의 중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형식의 문제도 중요하다. 1950년대 한국일보가 비즈니스 마인드를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한국 언론이 가장 닮지 말아야 할 언론의 전횡들이 일본에 다 있다.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의 소유, 편집 행태를 따라가는 부분들이 많아 매우 우려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잘 관찰하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이

지난 6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강병태 칼럼을 보니 '훈수'라는 표현을 썼다. 주변의 훈수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인데 한국일보 사태에 관한 우려와 애정을 번외자의 간섭으로 보는 그런 시각을 이번 기회에 버려야 한다. 독자, 국민 모두가 한국일보와 관계된 사람이라고 봐야 한국일보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신문법에는 편집권 언급이 안 돼 있고 유력 신문사들의 경우 편집규약도 허술하다. 편집권 독립을 강화하기 위해 좋은 방법이 없는가.

-이

공영방송은 대통령-방통위-방송사 이사진으로 이어지는 종적 지배 구조로 이뤄져 있다. 정치권력의 지배와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신문사들이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이런 지배 구조에 자발적으로 편입됐다. 방송 사업 재승인을 받기 위해 정부 통제에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사적 소유의 폐해에다 권력의 통제까지 겹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널리즘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분산적 소유구조는 그래서 대단히 중요하다. 방송의 편성권 독립은 의무조항으로 하는 것이 적절하나 신문에는 자칫 족쇄가 될 수 있다. 신문업계 내부에서 편집규약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경영진과 기자들이 지키는 게 중요하다.

-원

편집권의 법제화보다는 학계에서 편집권에 관한 긍정적인 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기존의 독자위원회보다 폭을 넓혀 시민사회가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회ㆍ정리=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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