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 생활자의 세부담이 늘어나는데도 "증세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와 관련 부처. 복지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는 '세금 폭탄'이라 공격하는 야당. 양자의 정치적 충돌이 건설적인 세법개정 논의의 본질적 논점을 흐리고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재검토 지시를 내렸으나, 논의가 정략적 수준에 머무는 한 정치권 격돌과 납세자의 반발이 언제든 재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여야 모두 근시안적 정치적 계산을 버리고, 솔직한 현실 인식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국민들도 납세자인 동시에 늘어날 복지혜택의 수혜자라는 점을 인식하고 적정한 세 부담 증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법개정안 원점 재검토 사태의 단초를 청와대가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민심과 동떨어진 채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만 없으면 증세가 아니다'라는 형식논리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기간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고, 구체적 방법으로 '비과세 감면 축소'를 제시했다. 이번 개편안을 발표하며, "소득공제 축소로 근로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은 아니므로 증세가 아니다"라는 억지 주장을 한 것은 이런 대선공약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한밭대 이준우 교수는 "대부분 국민을 분노하게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세법개정으로 월 1만원 밖에 안 되는 부담이 늘어날 뿐'이라는 발언도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이 민심을 너무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복지 확대라는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세율 인상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역시 "복지로 가려면 증세를 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5월 발표된 공약가계부에서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세입확충' 방식으로 2014년 7조6,000억원, 2015년 11조원 등 향후 4년간 43조원이 조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이 '세금 폭탄' '봉봉세(稅)'(봉급생활자를 봉으로 보는 세금) 등 민심을 자극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훨씬 넓고 두터운 복지혜택을 약속했으면서도, 이제와서 그 재원 마련을 위한 세입 확충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것이다. 이재은 경기대 교수는 "야당이 무조건 '세금 폭탄'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납세자의 의식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부담의 증가 없이 복지 확대를 기대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 기준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중산층의 소득세 부담은 낮은 편"이라며 "전체 근로자의 80% 가량은 낸 세금 이상의 복지 혜택을 받는 만큼, 일정 부분 세부담 증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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