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시집을 왔던 한 이주 여성이 정신 지체자로 몰려 억울하게 혼인을 취소당하고 위자료도 받지 못한 채 본국에 돌아간 사실이 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이모(48ㆍ농업)씨는 2010년 한 국제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H(32)씨를 만나 일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귀국해 혼인신고를 마친 이씨는 언어 장벽 등 때문에 H씨와 갈등을 빚었고 1년여 만에 법원에 혼인 취소소송을 냈다. 혼인 취소소송은 일반적인 이혼과 달리 결혼 당시엔 몰랐던 배우자의 결정적 하자가 드러날 경우 혼인 자체의 효력을 없애는 법적 절차로, 이혼 소송보다 요건이 까다롭다.
이씨가 주장한 H씨의 결정적 하자는 정신 지체였다. 이씨는 그 근거로 'H씨는 지능지수(IQ)가 59에 인지활동 기능이 5,6세 수준'이라는 정신과 검진결과를 법원에 냈다. 이씨는 H씨가 평소 옷가지 등을 아파트 아래로 집어 던지고 원하는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수시로 울거나 고성을 질렀다는 정황 증거도 제시했다.
이에 청주지법은 2011년 12월 "H씨에게 혼인 당시 이미 정신지체가 있었고, 이씨는 혼인 당시 그 사실을 몰랐다"며 이씨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여 혼인을 취소했다. 법률 대리인 없이 홀로 소송을 했던 H씨는 항소했지만 우즈베키스탄 행 비행기삯 200만원만 추가로 받는 게 고작이었다. 혼인 취소가 확정된 H씨는 결국 체류기간이 만료돼 지난해 7월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최근 이씨가 "정신지체 여성을 소개한 책임을 지라"며 결혼정보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H씨에게 아무런 정신 지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앞선 혼인 취소소송의 결론과 정반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단독 강민성 판사는 A씨가 결혼정보업체를 상대로 낸 4,200만원의 중개수수료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원고가 낸 증거만으로는 H씨에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정도의 정신지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H씨는 혼인 전 한국대사관이 지정한 우즈베키스탄 현지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 정신적으로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지난해 1월 국내 대학병원에서도 '한국에서 결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반응 이외에 다른 정신과적 문제는 관찰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혼인 취소소송 당시 법원에 낸 병원 진단서에 대해서도 "검진 당시 모국어인 우즈베키스탄어가 아니라 H씨가 원활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어로 통역이 이뤄졌다" 며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IQ가 59'라던 H씨가 본국에서 대학을 졸업해 간호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혼인 취소소송은 이혼 소송과 달리 보다 엄격한 판단이 필요한데 법원이 한국말이 서툰 H씨가 소송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이주 여성들은 언어적, 경제적 사정 등으로 소송에서 피해 보는 일이 잦아 법률 조력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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