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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20년] 지하경제의 역습 <중> 실명제 회피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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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20년] 지하경제의 역습 <중> 실명제 회피 백태

입력
2013.08.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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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은 2,205억원(532억원 납부)의 추징금을 피하기 위해 사돈일가뿐 아니라 노숙자 등의 명의로 된 차명계좌를 동원해 비자금을 은닉한 것으로 최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이 재산을 숨기기 위해 사용한 차명계좌는 현재 밝혀진 것만 20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전 대통령처럼 정ㆍ재계 거물들만 차명계좌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다양한 이유로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인 김모(51)씨는 올해 초 자신의 명의로 된 금융자산을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명의로 분산했다. 차명계좌를 개설한 것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지난해 2,000만원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한 푼이라도 절세하기 위한 조치였다. 김씨가 거래중인 금융기관에선 가족관계등록부, 인감도장 등만 요구했을 뿐 자금출처는 따지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 예금을 분산해 주었다. 김씨는 "대통령도 차명계좌를 사용하는데 일반인이 차명거래를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라며 "합의된 차명거래가 불법이 아닌 이상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실명제를 도입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차명거래 관행은 여전히 광범위하게 뿌리박고 있다. 가공의 인물로 만든 가명계좌는 없어졌더라도, 다양한 방법의 차명거래를 통해 탈세, 비자금 조성, 재산은닉, 편법 증여ㆍ상속, 주가조작 등 온갖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구속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개설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숨겨왔다. 이 회장은 이 차명계좌로 주가조작을 일삼으며 수백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된 김승연 한화 회장도 수백개의 임직원 차명계좌를 보유한 사실이 적발됐다. 연매출 200조원의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경영권 편법승계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에서 이건희 회장은 임직원 수천명의 차명계좌로 4조5,000억원대를 비자금 등의 목적으로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나는 등 차명거래는 대기업 오너 비리 수사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했다. 2010년 신한사태도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의 차명계좌가 발단이 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부터가 차명계좌로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보니 일반인에게까지 차명계좌가 널리 활용되는 있는 상황"이라며 "차명계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은 친지의 이름을 빌리는 차명계좌도 모자라 노숙자 등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의 명의로 만든 대포통장을 사용해 재산을 숨겨 왔다. 전 대통령 차남 재용씨는 2000년대 초 이트레이드증권에 노숙자 김모씨 이름으로 개설한 계좌를 통해 137억원어치의 국민주택채권(무기명채권)을 수표로 바꾼 뒤 차명계좌 7개에 나눠 담은 사실이 이번 추징금 환수작업에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5년간 1,400억원에 이르는 무기명채권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무기명채권은 채권자가 표시되지 않아 이른바 '묻지마 채권'으로 불리며 뇌물이나 비자금 등의 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잦아 전 전 대통령도 각종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무기명채권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3종(3조8,735억원 규모)이 발행됐으며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받는 등 비실명거래를 보장받아 왔기 때문에 거액의 자산가들의 세금회피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차명 계좌의 규모는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게 금융기관의 분석이다. 국세청이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 동안 세무조사 과정에서 확인한 차명 계좌가 총 3만1,502개에, 입금된 금액은 4조7,344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차명계좌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한 것은 없고, 탈세나 범죄 혐의로 세무조사 또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도"라며 "금융기관에서 계좌 개설 시 신분증만 확인할 뿐 자금출처 등을 물을 수가 없어 불법적 용도로 사용되는 차명계좌인지 일일이 가려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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