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사를 사죄하는 마음에 유물을 기증합니다."
지난 5월 부산박물관에는 뜻 밖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일본 기타큐슈에 거주하는 미야자키 사츠키(82)씨가 중국 유물인 문방사보 296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
치과의사였던 그는 1991년부터 중국에서 20여년 간 의료봉사를 펼치면서 6억여원을 들여 벼루 51점, 먹 49점, 붓 103점, 관지인장 93점을 구입했다. 현 시가로 10억원을 웃도는 이들 유물을 고스란히 기증하겠다는 말에 박물관 직원들은 곧장 일본으로 향했다.
부산박물관 관계자들을 만난 미야자키씨는 "위안부 등 과거 일본이 한국에 못할 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음에도 반성이 없는 것을 개탄한다"며 "일본에도 한국에 미안함을 품고 있는 지성인이 많다. 더 많은 이들이 행동했으면 좋겠다"며 기증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아끼던 유물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보기 위해 거리가 가까운 부산지역 박물관을 택했다.
그의 기증품은 예술∙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들로 평가된다. 먼저 벼루의 경우 중국 4대 명연(명품 벼루)이라 일컫는 단계연과 흡주연, 징니연, 홍계연이 모두 포함됐다.
특히 단계연은 '입김만으로도 먹을 갈 수 있다'하여 이른바 '꿈의 벼루'로 불린다.
이 단계연은 백반과 황반 등 문양을 이용한 가로 45cm, 세로 60cm 크기로 대만 고궁박물관 소장 국보와 유사하다고 박물관은 평가했다.
징니연은 강물에 침전한 고운 진흙을 틀에 넣어 구워낸 벼루다.
기증된 먹은 7건 49점이다. 16나한이나 고사인물도, 산수인물도, 십이지신상 등이 세트를 이룬 것으로 조각이 우수하고 조형성이 뛰어난 중국 청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붓은 필관(자루) 재질로 보면 대나무·옥·대모(거북등껍질)·상아·비취·도자기·칠보 등으로 다양하다.
인장 또한 수정·옥·상아·석 등으로 재료가 다양한 데다 산수문·십이지신상· 용 등의 문양을 조각했다.
부산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기증으로 문방 관련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며 "68주년 8.15 광복절을 즈음해 양심 있는 일본인이 기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고 평가했다.
박물관 측은 미야자키씨가 방한하는 오는 10월 관련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며, 부산시는 감사패와 명예시민증을 수여할 방침이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