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아침, 새로운 한국일보가 배달됐다. 평소보다 일찍 깨어 새벽 4시 반께 집어든 그 신문에는 본의 아니게 두 달 가까이 취재 보도활동을 할 수 없었던 기자들의 땀과 눈물과 깨달음이 지면마다 배어 있었다. 두 달 가까이 한여름 땡볕 속에서 투쟁하며 본인과 한국일보에 대한 자문과 자성을 통해 언론인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다. 종이신문의 종말이 임박한 것 같은 시점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한국일보가 회생과 생존을 넘어 발전을 지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정한 사고와 대응이 필요하다. 재정상태가 비교적 나은 언론사들도 장래가 어둡고 어려운 상황이다.
그 동안의 경영에서 한국일보사가 간과한 맥점은 기자가 곧 언론이라는 점이었다.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편집국 폐쇄'라는 조치가 이런 사실을 잘 알게 해준다. 창간발행인 백상 장기영은 목마른 사람이 물 구하듯 인재를 널리 모았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열린 인재경영으로 한국일보의 터전을 일구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이후 쇠락과 퇴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기자사관학교' 한국일보에서는 수많은 인재가 계속해서 회사를 떠났다. 박봉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근본은 사람을 알아주지 않고 제대로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다른 언론사로 떠나면 그가 있던 자리는 빈 땅이 된다. 아니, 그 땅이 통째로 비는 게 아니라 통째로 다른 언론사에 넘어간다. 그가 보유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망 모두가 이제는 남의 차지다. 단시일에 메울 수 없는 구렁과 웅덩이가 곳곳에 생긴다.
기자들도 당연히 생활인이지만 그들은 돈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여건이 좋지 않아도 신명나게 해주고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알아주면 그들은 어려운 걸 참으면서 제 길을 간다. 그런데 한국일보의 경영자는 기자들을 정면으로 쳐다본 일이 있는가,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노래해본 적이 있는가, 특종을 치하하고 낙종을 질타해본 적이 있는가, 창간기념식에 나와 목표와 비전을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모습을 한국일보 기자들은 본 적이 없다. 가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족들은 알 수 없었다.
한국일보의 이 상황에 나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온갖 직위를 다 거치고 퇴직한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다. 다만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도 장난치고 신문을 이용하는 기자가 없었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그런 기자들은 한국일보에서 자라지 못하고 발붙이지 못한다. 신문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기자들은 특히 이용할 수 없다.
함께 새기고 싶은 말이 많은 시점이다. 백상은 "납이 녹아서 활자가 되려면 600도의 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활자화되는 기사는 600도의 냉정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선배들은 수시로 해주었다. "사건기자 선배는 인생 선배다. 취재하며 인생을 배워라." "사진 찍듯 현장을 한눈에 다 파악해라." "기사란 원래 120을 취재해서 80을 쓰는 것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자는 많은 걸 지킬 수 있다." "애인에게 말하듯이 한마디로 제목을 달아라."
이런 깨우침은 사실 한국일보 기자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기자가 곧 언론이며 저마다 언론사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모든 언론인들에게 다 해당된다. 갈수록 질 낮은 기자, 엉터리 기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우치지 않고 휩쓸리지 않는 신문을 더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한국일보 기자들에게는 특히 소중하다. 이번에 한국일보의 존재의의와 가치를 독자들과 공유하게 된 것은 소중한 자산이다. 이것은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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