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덥고 습해서 어쩔 줄 모르는 밤이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창문을 열어두면 바깥의 소음이 잠을 방해하고 창문을 닫고 누우면 숨이 턱턱 막혀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머리맡에서는 모기가 앵앵거린다. 물려서 가려운 것보다도 그 소리가 더 신경을 긁어댄다. 배도 싸륵싸륵 아프다. 매일 냉면이나 맥주, 아이스크림 같은 찬 음식을 달고 사니 도리가 없다.
열대야. 이런 밤을 열대야라 하지. 억지 잠을 청하며 몇 번 되뇌어 본다. 열대야란 최저기온이 25℃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밤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전적인 뜻과는 상관없이, '열대야'라고 발음하면 엉뚱하게도 열대과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 람부탄. 두리안. 불타는 단맛과 기괴한 생김새를 지닌 이국의 과일들. 이런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린 알록달록한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상상의 시야를 살짝 바꾸면 집 앞 과일가게도 나온다. 파인애플과 바나나 옆에 탐스럽게 놓인 복숭아와 포도송이들. 과일가게 좌판이란 무릇 한여름의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가 아니던가. 참. 새파란 아오리 사과도 나왔지. 내일은 아오리를 사먹어야겠다.
이렇듯 후덥지근한 밤에서 아오리까지 건너오고 나면, '열대야'라는 말은 어쩐지 불쾌감을 청량감으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단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열치열,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 했던가. 나로서는 열대야의 무더위를 열대야의 밝고 환한 '어감'으로 다스리는 것이 요즘의 피서법이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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